석류
안도현
마당가에
석류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서
나도 지구 위에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노라,
나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몰랐지요.
그때부터 내 몸은 근지럽기 시작했는데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석류나무도 제 몸을 마구 긁는 것이었어요.
새 잎을 피워 올리면서도 참지 못하고 몸을 긁는 통에
결국 주홍빛 진물까지 흐르더군요.
그래요, 석류꽃이 피어났던 거죠.
나는 새털구름의 마룻장을 뜯어다가 여름내 마당에 평상을 깔고
눈알이 붉게 물들도록 실컷 꽃을 바라보았지요.
나는 정말 좋아서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찾아왔어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입을 딱, 벌리고 말이에요.
가을도, 도대체 참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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