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도(尋牛圖)
사윤수
“적게 소유하고 많이 존재하라.”
무소유까지는 어렵겠으나 이 잠언은 내게 큰 힘과 용기를 준다. 훗날, 단칸방에 홀로 앉아 미닫이 방문을 열고 추적이는 가을비를 내다보게 될지라도 나는 삶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라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꼭 가야할 것처럼 더 늦으면 안 될 것처럼, 무엇에 채이듯 나는 섬으로 갔다.
2016년에 제주도 우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입주했다. 따져보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달에 절반은 스튜디오에서 지내야 하는 규정이다. 이왕 나서는 김에 더 버리고 온전히 섬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이틀을 출근해야 하는 대구 일자리를 놓을 수 없었다. 저가항공을 타도 비용이 만만찮은데 나는 결국 두 집 살림을 차리고(!) 한 달에 세 번씩 대구와 섬을 오갔다. 그렇게 시작한 섬살이가 삼 년 째다. 두 해 동안을 창작스튜디오에 오갔고 올해 이월에 입주 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나는 돌아설 수 없었다. 아직 섬의 속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섬이 들려주는 노래도 받아 적어야 할 게 많았다. 시절인연이란 게 그런 걸까. 내가 늘 선망하던 언덕 위의 집에 뜻밖으로 방을 얻어 지금은 한 달에 두 번쯤 섬에 오간다. 이곳은 일출과 태풍의 최전방, 거센 바람이 불면 허연 파도 거품이 휙휙 날아와 창문에 맺히고, 화창한 날이면 나주 샛골 쪽물을 죄다 들이부은 듯 명주 바다가 우도의 지중해를 연출하는, 야누스 같은 장소다.
우도 신입생인 나는, 풍랑예보가 내리면/ 배가 못 뜰 가능성이 많은지/ 한 번 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앳된 목소리의 여직원이/ 다시 차분하게 알려준다/ “그건 하늘만 알아요”
작은 섬이라고 하면 고립이나 나약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쉽다. 그러나 우도는 그런 섬이 아니다. 살아서 숨 쉬고 강하고 하루에도 변화무쌍한 역동적인 생명체다. 비가 왔다가 개였다가, 바람이 이리 불고 저리 불고 겨울엔 사흘에 한 번 꼴로 풍랑주의보가 뜨고, 구름은 시시각각 변하고 가지가지 꽃이 피고, 노을은 날마다 다르고 밤에도 섬은 잠들지 않는다.
창작스튜디오에서 지낼 때 겨울바람은 허공에서 짐승들이 목을 떼이는 것 같은 비명으로 사흘 밤낮 포효했다.휴지를 말아 귀를 막으며 바람소리를 견디지 못해 섬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언덕 위의 집으로 이사 하면서 이제 그 바람의 횡포에서는 벗어나겠지 싶었는데 에나 아닐세라, 집을 뒤흔드는 이곳의 바람소리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문 밖에는 나갈 수도 없다. 종잇장처럼 날려갈 판이다. 하루는 도저히 무서워 내 방을 두고 겨우 남의 집에 가서 자기도 했다. 그러나 어이 모르리. 영등할망께서, 이 년아, 이 바람 정도는 견뎌야지, 하며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을.
허공의 새 떼는 바닷속 물고기 떼처럼 날고 바닷속 물고기 떼는 허공의 새 떼처럼 헤엄친다 사람이 바다를 바다라 이름 붙이고 허공을 허공이라 이름 붙였는데 허공과 바다가 같고 새와 물고기가 다르지 않았다
묵시록 같은 겨울을 통과하고 나면 섬의 봄은 화관처럼 찬란하다. 수선화, 애기동백, 유채꽃, 갯무, 청보리가 앞다투어 핀다. 꿈결이 펼쳐진다. 다정큼나무, 예덕나무 이름이 참 예쁘다. 나지막하고 고운 꽃들 땅채송화, 등대풀, 번행초, 갯금불초, 갯메꽃, 순비기나무, 봐도 봐도 영롱한 갯까치수영. 풀인데도 키가 다섯 자나 크고 어지간히 멋없는 갯강활과, 향기는 은은하지만 피고 지느라 시난고난 문주란 꽃도 섬의 식구다.
그 사이에 쪽파 씨는 잘 말라서 뭍으로 팔려가고, 해녀들은 물질에 바쁘고, 물가엔 자잘한 것들 삿갓조개 보말 갯강구가 북적댄다. 검은 밭담 안에는 땅콩나무가 부지런히 자란다. 우도에서는 그렇게 초록과 검정이 다정하고,다정에 질투가 나면 해무는 가차 없이 섬을 뒤덮어버리고, 하얗게 앞이 보이지 않고 등대에서 종일 무종이 울린다. 어느새 또 보름까메귀 떼가 날아와 허공을 맺고 풀며 서부렁섭적 세발랑릉 흑랑릉 추월적막 공단* 같은 군무를 펼치니 예술의 향연이 거기에 있다.
어떤 파도는 밀려와/ 돌아가지 않고/ 한 마리 백마가 된다/ 하얀 갈기는/ 퇴화하지 않은 해안선/ 파도의 후생이/ 고요히 섬을 연주한다
관광객을 실은 막배가 떠나고 밤수지맨드라미빛 노을이 지미봉으로 저물 때 섬은 잠시 적막 한 채가 된다. 그 때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면 섬이 통째로 내 것 같다. 수평선엔 여기저기 고깃배들 집어등이 빛나기 시작한다. 등대 불빛이 푸르게 회무하며 온 섬을 비춘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사는 사람, 섬이 좋아 섬에 들어와 사는 사람, 섬에 돈 벌러 온 사람 하나 둘씩 술집에 모여든다. 나도 가끔 그 틈에 끼어들곤 한다.
장작 없이 파도에 불을 지피고 솥 없이 파도가 끓기 시작하고, 뜨거운 파도는 시들 줄 모르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파도는 언제 영원을 빠져나갔다가 돌아왔는지 아직도 파도치고, 어떤 파도는 수국이 되고 백마가 된다. 음주단속이 없는 치외법권 파도 나라에서 나는 바다 한 접시에 담긴 시의 살점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말은 인간에게 불필요한 사치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오가지 않고 오래도록 섬에 박혀 있으면 그제야 섬이 싫어질까. 흑산도 아가씨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가 서러움이 검게 타버리면 더 이상 섬에 미련이 없을까. 해변에서 바닷속으로 열 발자국만 걸어 들어가면 죽음이다. 생사의 경계가 불과 열 발자국이다. 그 넓은 바다에서 고기들은 왜 도망가지 못하고 어리석게 그물에 걸리나 싶은데 그게 또 섭리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고 섬에서 죽은 사람은 섬에 묻힌다. 섬에는 무덤들이 많다. 내가 사는 집 주변에도 몇 개나 있다. 나는 그 땅에서 자란 봄나물을 뜯어먹는다. 제주 4·3항쟁 때 피해자들을 바다에 수장 시켰다. 그 주검을 전복과 갈치들이 뜯어먹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생선이 다 그 어류의 후손들이다.
습기는 섬의 숙명이다. 삶의 바닥처럼 곳곳이 축축하다. 심할 때는 맨 발바닥이 방바닥에 쩍쩍 들러붙는다. 무엇이든 관리하지 않고 조금만 방치하면 금세 곰팡이가 피고 녹슨다. 인간관계와 무엇이 다르랴. 손가락보다 큰 지네가 방에 나타나고 뱀이 마당을 지나간다. 나의 시는 이 모든 풍정(風情)의 지층에서 꾸역꾸역 발아한다.
그럼에도 굳이 시를 쓸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인간이 지닌 말의 특권과 우월성에 동조하지 않는다. 만물은 말없이 기운생동 한다. 천변만화하는 섬이라는 생명체 앞에서 문자는 초라하다. 인간은 말로써 모든 불행한 역사를 자초했다. 지금에 와서 이런 의심은 극단적이겠지만 우리는 말없이도 살 수 있다. 불가능성이나 바깥이나 주름이나 미끄러짐이라는 인문의 담론조차 섬에서는 무력하고 무소용하리. 자연은 순리이고 관대하지 않으니 우리는 바람 하나 앞에도 꼼짝 못하고 지진이 지축을 흔들면 마냥 쪼그라든다. 이런 존재의 한계를 애써 외면하거나 인정하며 스스로 구원하려는 행위가 글쓰기가 아닐까.
태풍이 비켜가기를, 지구의 기온이 더 올라가지 않기를, 인간의 적이 인간이 아니기를 전쟁이 없기를, 내일도 태양이 뜨기를 바라는 마음 앞에 시의 자리가 있다. 이제 고백하건데 나는 섬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다. 바람에 날려서 왔다. 바람이 나를 이곳으로 등 떠밀어 놓고 종이와 연필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그런데 소는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밤마다 불빛을 좇아 창문 틈으로 죽자고 끼어들어 수북이 쌓이는 풍뎅이를 나는 아침마다 연필로 후벼 파고 치우느라 낑낑댄다. 소는 어느 꿈에나 만날는지, 아득하다. 흰구름은 밤하늘에도 쉬지 않고 흐르는데......
* 판소리 - ‘비단타령’ 가운데
- <2018년 대구문학>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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