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눈사람 외 1편/변희수

김욱진 2019. 1. 24. 08:39

                 눈사람

                            변희수


녹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너는 얼음을 가졌고 나는 심장을 가졌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저 개는 살아있다고 영혼에는 색깔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그만 둔 말이 하얗게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입을 틀어막아버릴 때

드디어 한 뭉치 흰눈이 될 때


쌓이고 쌓인 말들은 어디로 던져야 하나요?

처음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펄펄펄 눈은 내리고

펄펄펄 끓어 넘치는 것이 있어서


나는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말을 던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돌팔매를 던져도 피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퍽퍽, 차디찬 가슴에 박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가능한 것을 물어보려다가

차가워졌지만


나는 잘 녹지 않으니까 어쩐지 고약한 사람 같고

희고 성스러워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눈이 부셔서

가장 먼저 녹는 사람입니까 하고 물어보았는데

입김이 닿은 곳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침을 흘리는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주말농장

                    변희수

 

무밭 앞에서

아는 사람이 간수를 오래 뺐다는 소금을 나누어주었다

무슨 생각인지

못둑가의 갈대들이 숙인 고개를 자꾸 흔들었다

제대로 된 소금을 가졌구나

우리는 매우 기뻐했다

입속에 털어 넣은 소금이 녹고 있었는데

무밭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겁 없이 푸르기만 하고

무들은 이미 풋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시험하듯 푸른 머리채를 쥐고 흔들어 보았지만

무들은 한결같이 명백하고

믿을만한 소금이라는데 덜 자란

주먹을 쥐고 무밭을 돌아 나오면

무질서하게 떨어진 낙엽들이 굴러다녔다

쥐를 노리는 들고양이가

숨은 그림처럼 무밭을 돌아다녔지만

누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

주말 같은 건 너울너울

건너가도 좋겠다고

우리는 숙인 고개를 끄덕거렸다


   『 모든 포엠 (2019,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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