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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정년까지 살아가는 법

김욱진 2020. 2. 18. 23:11

교사로 정년까지 살아가는 법


98년에 발령받아 20년차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래도 정년까지 하려면 무려 19년이나 남았다.
산술적으로 보면 20년 한 나는 경력대로 줄을 세우면 중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력 순으로 정렬시켜보면 내 앞에 계신 선배들보다 내 뒤에 있는 후배님들이 더 많다.
표준 분포곡선으로 치면 상위 20%-30%에는 족히 들어갈 듯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처럼 정년이 보장 되지 않은 직장이 거의 대부분인 상황에서 금고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 이상 그 직분이 보장되는 무려 철밥통(?)인 교직을 떠나가는 교사들이 많아진다.
명예퇴직 제도가 시행되고 난 이후 많은 경력교사들이 교단을 떠났고 그 추세는 더 가팔라져서 명퇴를 하려해도 경력 순으로 하고 있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단일 호봉이라 근속연수가 올라가면 보수도 많아진다.
보수로만 따지면 같은 호봉의 관리자보다 뒤떨어지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교사들이 명퇴를 신청하고 또 그 아래 경력교사들도 허덕이며 명퇴를 생각해본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한다.
명퇴수당 챙기고 연금 챙기면 미리 나가는 것이 좋다고.
배부른 투정이라고.
맞는 말이다.
배부른 투정 맞다.
하지만 왜 교사는 이렇게 교사의 길을 힘들어하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가르친다고 자위하는 생계형 교사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교사
생계형으로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하고 이어나가는 건 정말 고역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교사가 서운하게 한일이 있으면 득달같이 항의하는 부모.
교육기관이라기 보단 행정기관에 가까운 학교
그래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위계와 서류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조직문화는 교사를 더 옥죈다.

가르치는 일은 전달이 아니라 교감과 관계의 연속이다.
사무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인 일이고
분석적인 것이 아닌 종합적인 것이며
구조적이라기 보다는 예술적인 행위에 가깝다.
교사는 지식전달자라기 보다는 행위예술가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이미 교사의 역량과 자질은 이렇게 변하고 있고 이미 그러길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거기다 행위예술가이면서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품을 요구하며 전문가적 지도자질을 가지면서 행정적 업무능력도 우수해야 비로소 능력있는(?)교사라 생각한다.
그런 교사가 되기엔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니 괴롭다.

착각이다.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교사가 능력있는 교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가야 하는 교사는 바로 나 자신이다.
기준이 나빠서가 아니다.
기준에 따라 능력치를 수치화 하고 그것으로 서열을 매길 때 난 가장 무능한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 기준을 들이밀면 과연 어떤 교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요구하는 기준자체가 너무 추상적이 높다.
교사가 요구하지 않아도 사회가 요구하고 부모가 요구하고 관리자가 요구한다.

이제 떳떳하게 반문할 용기를 가지자.
그럼 당신은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은 교사니 그런 자질을 가져야지요. 그렇지 못하면 당신이 받는 보수와 사회적 지위만 챙기는 철밥통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오”
어디서 누군가 이런 호통을 듣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지는 않는가?
이런 잣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혼란스럽다.
아무 준비도 안 되어있는 것 같은데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소시킬 만한 길이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그럼 그런 길이 있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게 무언가?
바로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최소한 장학사라도 전직하면 교실에 아이들을 안 가르쳐도 된다.
그러면 아이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면책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견 그럴 듯하다.
“아이들 가르치는게 힘들어서 승진하려한다”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며 승진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사석에서 난 수많은 교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실제 이런 마음으로 하려는 사람이 많다.
교사와 교사
교사와 관리자
이런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승진하려는 교사도 많다.
궁극적으로 이건 해결 방법이 못된다.
물론 소신과 비전 철학을 가지고 승진하려는 분들은 예외다. 이런 분들은 적극 응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공적으로 승진하는 교사도 있단 말인가?
있다.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성공하는 교사의 삶과 승진으로 성공하는 교사의 삶의 공통점이 있는가?
있다.
역시 많지는 않지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 자체에 주목하고 그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자신의 능력을 믿지만 절대시 하지 않는다.

이 무슨 역설인가? 교사로서의 능력은 계량하고 수치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능력이 있다. 능력이라는 것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표출되지만 딱하니 그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별것 아니라고 여기거나 말한다. 같이 경험해보고 일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걸 크게 생각안한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따르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없다.

둘째. 자기 이야기가 분명하다.

첫 번째와 조금 다른 색깔로 보인다. 자기 주관과 캐릭터가 강하다.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따르는 것에 유연하면서도 자신의 것은 확실히 지킨다.
이 역시 역설이다.

셋째. 교실에서 승부보고 아이들에게 인정받는다.

누구나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교사라고 별반없다. 그런데 승진을 하든 교사로 남든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인정받는다.
뭘 해서 받는지는 각자 캐릭터대로 한다.
하지만 이것 참 애매하다. 아이들에게 맞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사탕, 선물, 이벤트 공세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도 알건 안다.
오히려 일년 동안 가르친 아이들의 다수가 교사를 인정해 줄 때 무엇보다 짜릿함을 느낀다.
승진하려는 건 이런 느낌을 다른 교사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교사로 남는 것도 이 느낌을 유지하기 위함이 크다.

넷째.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진화한다.

위의 세가지의 특징을 일관성 있게 유지한다.
그것 자체도 참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어제와 다르고 작년가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것이 진화다.
일관성을 가지면서 스스로 진화한다.
말로 하고 글로 쓰면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다섯째. 타인에겐 너그럽고 자신에겐 엄격하다.

타인에게 너그러운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즉 자신도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잘못에 대해 엄격하지 않다. 대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이것은 실수와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는 두 번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타인의 실수나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지 먼저 생각한다. 그러니 타인에겐 너그럽게 보이고 여유로워보인다.

여섯째.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타인과 관계 형성을 하고 뭔가 일을 할 때 역할분담에 이 기준을 둔다.
즉 협력을 잘 하는 교사는 자신의 역할과 할 일을 좀 더 많이 둔다.
자신이 좀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우월감도 가지지 않는다.
즉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건 전체적인 사고와 통찰이 바탕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