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일기․4
추석이라고 아들 집에 온 구순 노모 모시고 딱히 갈 데는 없고 해서
아파트 내 어린이 놀이터 빈 의자에 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미끄럼 타고 노는 꼬마 아이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때때옷 입은 예닐곱 살배기 여자아이가 머리 희끗희끗해진 내게 다가와
할아버지 여기 왜 왔어요? 하는 통에, 뜨끔
하라…버찌? 어어, 그래… 너희들이랑 놀려고 왔지, 그러자
다짜고짜 사진 찍어준다며 주머니에서 폰을 자랑하듯 불쑥 꺼내더니
할머니랑 가까이 다가앉아 보란다
얼떨결에 나는 어머니 곁에 바짝 다가앉았고
그 아이는 부부인 줄 알고 착각, 찰깍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청춘에 홀로된 어머니, 영감이랑 생전에 찍은 사진 한 장 없는데
잘됐네, 나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착각, 찰깍 찍어준 그 꼬마 아이가 얼마나 맹랑해 보이는지, 손주처럼
내 폰을 건네주며 다시 한 번 찍어달라고 그랬더니
신이 난 꼬마 아이는 사진사처럼 우리 모자를 데리고
시이소 태워 놓고 한 판, 그네에 앉혀 두고 한 판
인공폭포 지키고 서 있는 소나무 껴안고도 한 판
노부부처럼 걸어가는 스냅사진도 몰래 한 판
가족사진 한 장 천 원을 주고 찍던 시절
사진관 벽에 걸린 부잣집 가족사진 부럽게 쳐다보며 오갔던
나는 오늘 난생처음 엄마랑 손잡고 놀이터에 와서
육십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얘야, 오늘 찍은 사진 넉 장 값은
낼이 추석이고 하니 반쯤 깎아서 이천 원만 줘도 되겠니?
그래도, 그 꼬마 아이 표정은 보름달처럼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