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
김륭
그녀는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
나는 이런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지고 기다렸다는 듯 난간이 생긴다
나는 누워있고, 그녀는 생선과 함께 난간 끝에
위태롭게 서있다
그러나 어떤 고요는 말이 아니라 살이어서 그녀는
생선과 모종의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비릿하게 흘러나오는
고백의 냄새를 맡는다
그녀가 울고 있다 가라앉고 있다
그녀의 생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물들이
물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사히
가라앉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생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석쇠 위의 생선처럼 몸을 뒤틀며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가 메기나 미꾸라지처럼 좀 기분 나쁘게 생긴
어떤 남자가 아니라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는
이런 이야기가 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세 마리, 여러 마리 생선처럼
내 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살아서
잊힌 그런 연인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 리디아 데이비스, 『불안의 변이』 P.61 「생선」 중에서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젠가는 / 한용운 (0) | 2024.12.02 |
---|---|
획일화에 대하여 / 오승강 (0) | 2024.10.03 |
아끼지 마세요 / 나태주 (5) | 2024.08.28 |
호박꽃 / 안학수 (0) | 2024.08.28 |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1) | 2024.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