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문인수
말복 날 수륜리(水輪里) 유원지엘 갔다.
우리는 계곡물 콸콸콸거리는 어느 식당
숲 그늘에 자릴 잡았다. 물 가 여기 저기 네모난 살평상을 박아 놓고, 그러니까
급류의 속도를 최대한 붙잡아놓은 집일까. 하지만 유수 같은 세월,
희끗희끗 달아나는 물살이다. 옆 자리
살평상엔 중늙은이 아주머니 넷이 먼저 와 앉아있다.
닭백숙에 소주도 두어 병 곁들여 조용히
복달음하는 중.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세월이 흐를까, 계곡물 소리는
막힐수록 요란하다. 계곡물 소리는 여기저기
커다랗게 엎딘 바위들도 연속, 험하게 잡아 삼켜 제 속도에 매단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가지 않는 세월,
아주머니들은 음식상을 치우게 하고 각기
웅크리고 눕는다.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친한 사이끼리 일생일대를 잇대며, 그러나 모르고 잠시
함께 굴러가는 것이다. 무엇이 물의 바퀴를 면할까, 몸 맡겨버린
이 편한 세월. 한 사람씩
살평상 각 면을 둥글게 구부려 누웠다.
*시인수첩, 2011년 여름(창간)호
* 시작노트 : 눈으로, 생각 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에 빨대만 꽂아 기울여 전부 시가 된다면 과연 시 쓰는 재미가 있을까. 돌밭의 돌을 낱낱 뒤집어보듯이 그것들의 젖은 데를 단박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면 과연 시 쓰는 기쁨이 있을까. 시가 망해야, 망해서 앞이 깜깜하고 막막해져서야, 그리하여 안달복달해야 겨우 시의 실마리라도 잡게 될 것 같다. 나는 요즘 시랑 사귀는 일에 너무 게으르다. 시는 그 속이 아주 못된 애인이어서, 내가 하루 이틀 저를 소홀히 하면 저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아예 나를 잊는다. 이미 늦었을까, ‘반성’해야겠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혀/송재학 (0) | 2011.06.14 |
---|---|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0) | 2011.06.01 |
오동꽃/이홍섭 (0) | 2011.05.25 |
돌멩이 하나/김남주 (0) | 2011.05.19 |
치워라, 꽃!/이안 (0) | 2011.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