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동물원의 오후/조지훈

김욱진 2011. 11. 15. 11:26

  동물원의 오후

                              조지훈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동물원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시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시집을 읽는다.

 

철책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사방에서 창살 틈으로

이방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무인한 동물원의 오후 전도된 위치에

통곡과도 같은 낙조가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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