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후회스러운
정일근
한여름 폭염. 무더운 거리 나서기 싫어, 냉방이 잘 된
서늘한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편안한 점심.
오래 되지 않아 3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올 단골 밥집 최씨 아주머니.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과 국, 예닐곱 가지 반찬의 무게, 염천에
굵은 염주알 같은 땀 흘리며
오르는 계단,.....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보다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과 늙은 시어머니의 치매, 아직도
공부가 끝나지 않은 어린 사남매,
단골이란 미명으로 믿고 들려준 그녀의 가족사.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한다)
서늘한 사무실에 짐승처럼 갇혀, 흰 와이셔츠 넥타이에 목 묶인 채 먹는 점심.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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