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장 노인 장 보기/김종길

김욱진 2011. 12. 22. 11:25

                       장 노인 장 보기

                                     김종길

 

 

 

  "오늘 장에는 뭣이 제일 헐터노?"

 

  꽃물 다 터지는데 어쩌면 좋아! 앞집 장 노인 쌀 한 가마 싣고 읍내 장엘 갔겄다. 난장에서 쌀 한 입 내고 젊잖게 신발가게에 들어섰겄다. 집 나설 때 손주놈이 연필로 꾹꾹 눌러 그려준 그 상표를 요리 대보고 조리 대보고 운동화 한 켤레를 들었다 놨다를 수삼번 끝에 손때만 잔뜩 묻히고 신발집을 나오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라! 어깨는 머쓱하고 목은 자라목, 안면은 울그락푸르락, 다리는 버쩍버쩍, 하늘을 반쯤만 쳐다보고 땅도 반쯤만 쳐다보고, 한 손은 허리춤에 또 한 손은 삿대처럼 휘저어며 시장통으로 향하신다. 어물전에 들러 첨벙첨벙 바짓가랭이만 적시고 비늘을 털어 낸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니 젖은 담배개비가 손가락 사이에서 연기는 안 나고 헛바람만 쇅쇅 빨리는구나! 괜스레 어물전 아줌씨와 한바탕 시비 걸고 땡볕에 온종일 뺑뺑 돌다가 제풀에 못이겨 다시 신발집을 찾았는데 나이도 많지도 않은 새파란 주인놈이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는 판에 손주놈이 그려준 고 운동화만 움켜쥐고 막걸리 한 잔 값만 깎자고 깎자고 통사정을 하네그려! 허허! 그 질로 경운기마저 택택거리고 목구멍은 화구통이라! 주점으로 뛰어들어 막걸리 한 사발을 콸-콸콸 들이켜고 생고기 먹은 양 김칫국을 벌겋게 머금고 하시는 말씀! "주모! 오늘 막걸리 값은 외상이여!"

 

  "니미랄, 헗기는 뭣이 헗어! 돈이 제일 헗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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