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맨발로 걷기/정이랑

김욱진 2013. 12. 7. 17:18

                 맨발로 걷기

                 정이랑

 

 

  맨발로 걸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어나서 맨발로 선 적이 몇 번이었을까

  맨발로 서서 하늘은 또 몇 번 보았을까

  흙으로부터 나를 꽁꽁 싸매고 있지나 않은가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맨발로 걸어보세요>

  누군가가 세워놓은 마음따라 맨발로 공원을 걷는다

  발가락 사이사이 핥아주는 흙들이 친근하다

  혼자 맨발로 와서 언젠가는 맨발로 돌아가겠지

 

  돌아갈 생각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두려움도 느낀 적 없다

  물 흐르듯 바람이 불어가듯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콧노래를 불러야 할 수밖에 없다

 

  맨발로 걸어 보자

  벗을 것 다 벗어놓고

  맨발로 걷다보면

  내가 너이고

  너가 내가 되는 것을

  내 아이에게 알려줘야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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