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크다
문인수
물은, 저를 물들이지 않는다.
팔이 긴 물풀들의 춤을 한 동작도 놓치지 않고 계속 그대로 보여주고
무수한 돌들의 앙다문 말을 한 마디도 안 빼고 노래로 다 불러낼 뿐
물아래 맑은 바닥, 어떤 의심도 사지 않는다.
물은 한결같다는 뜻, 그 힘이 참 세지만 저를 몰고 가는 게 아니다.
하늘과 땅이 기울이는 대로 흘러, 적시며 먹이며 쌓이며 거기
아름다운 풍경으로 홀연 나타나 가로되,
아 물의 동인(同人)이다, 봐라. 강이며 호수며 바다 바라보는 거대한 순간, 지난날들과
앞날들의 총화가, 푸르다!
그대 어찌 살고 싶지 않겠느냐.
저 깊이를 두고 '물빛'이라 한다. 그러나
물은, 저를 물들이지 않았다.
ㅡ『유심』(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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