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
마경덕
벽에 목을 걸고 살던 그가 죽었다
벽은 배경이었을 뿐,
뒷덜미를 물고 있던 녹슨 못 하나가 그의 목숨이었던 것
생전에, 데면데면 바라본 바닥은 그를 받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간의 실핏줄까지 환히 꿰더니 정작 벽과의 관계는 풀지 못하고
그는 추락했다
드러난 벽의 속살, 뒤편
직사각형 족적 하나가 필생의 흔적이었다
바닥은 허공을 받치는 기둥
조각조각 이어붙인 시간이 바닥으로 흩어지고
심장이 멎으려는 찰나, 시간을 뼈를 맞추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손목으로 옮겨와 태연히 흘러갔다
밤낮없이 분류하고 조합했던 하루들
심정을 관통하던 전율과 초를 다투던 치열함은
벽을 놓치는 순간 사라지고,
그가 평생 섬겨온 시간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묵직한 추를 만져본다
시간이 빠져나간 빈 몸
한 번도 몸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제 몸이 무덤이다
관처럼 기다란 나무상자가 죽은 몸을 담고 있다
<신생> 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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