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우물
임동윤
주렁주렁 온몸에 링거 줄을 매달고
가랑가랑 숨결 잦아드는 마른 우물 하나 누워 있다
수없이 퍼내어도 늘 찰랑찰랑 만수위를 이루었던 몸
두레박만 내리면 언제나 뼈와 살과 단단한 생각들을
넘치게 담아내셨던 우물, 우리 육남매가 퍼마셨으나
하룻밤만 지나면 다시 그 우물은
출렁출렁 일정한 만수위를 유지하곤 했었다
그러던 몸이, 어느 날 문득 폐답이 되어 있었다.
조금씩 잦아들면서 드러나는 밑바닥
넘쳐나던 물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나뭇잎만 쌓이고
검버섯 핀 벽엔 하루살이 모기떼만 알을 까고 새끼를 쳤다.
별빛 달빛 찰랑거리던 여름도 가고
이젠 황갈색 버들잎만 툭툭 떨어져내린다
찢긴 걸레조각과 과자봉지만 둥둥 떠다니는 그 속,
찰랑대던 몸 대신 꼬로록 잦아드는 물소리
링거액 떨어지는 소리만 병실의 고요를 흔들고 있다
이젠 퍼 올릴 수 없는 마른 우물 하나
온몸에 링거 가득 매달고 가랑가랑 누워 있다
임동윤 | 1968년 강원일보로 등단. 시집으로 《연어의 말》 《아가리》
《따뜻한 바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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