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김명인
철둑 가장일 끌고 오는 여우비,
저물 무렵
잠깐 놀러 나온 구름이 길을 묻는다
만곡 끝 닿는 곳까지 갖은 파랑 펼쳐놓고
바다 한쪽을 후둘겨 소낙빌 털어내는
여우비, 한 풍경에도 이렇게 확실한
두 세계의 경계가 있다
나, 지금 물든 풍경의 틈새에 끼어
한켠으론 젖고, 한켠으론 메마르며
땅거미 속 아득하게 지워져가는
저 철길 보고 있다
길 사라져 헤맬 일로 고단해지면
우는 화상아, 그내나 나나 둑 아래 감탕밭
스쳐간 비 자리 엎어진
물 웅덩이로 주저앉아
갈 곳 없는 노을 텅 비게 담아내며
명지 바람에도 주름 접힐 파문으로나 남았다
바다 건널 일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모래펄을 쓸고 있는 여우비,
어느새 몸 무거워진 가을머리 저 여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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