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토끼/황학주

김욱진 2013. 12. 29. 13:18

토끼

  황학주

 

 

벼랑 위에 아이의 몸으로만 봉분을 쌓고 내려와

그만 떠나야겠다 싶으니까 토끼가 튀어나왔다

중얼거리며 풀섶을 걸어간다

뛰노는 것들의 가여움을 생각하느라 눈이 똥그레진다

 

오십 년 된

엉덩이만 붙이게 된 낮고 둥근 의자에 앉아

소 치는 유목부족의 차를 마시며

더 이상 불리지 않는 강의 이름을 마른번개처럼 듣는다

굶은 아이들을 소리 내지 않고 찔러 넣은

어머니의 골짝이 물도 없이 똬리를 틀고 똬리를 풀 때

 

아이의 키만 하게 서 있는 개미집 위로

맨 처음 찾아온 죽음은 손으로 먹고

나중 찾아온 죽음은 눈으로 먹어

배부른 어머니의 울음 같은 납골묘지

둥실 올라와 붙은 큰 달이다

 

모래바람이 물뼈 부스러기를 마른 강 밖으로

한 삽씩 들어낼 때

너는 다 발라 먹힐 때까지 벼랑에서 헤맬 것

그곳에서 히비스커스 꽃뭉치 독수리조상이 깨끗이 너를 흟을거야

아랫도리가 많은 어머니의 슬픔을 열고 나와

졸아붙은 구릉 위에 두 귀를 쫑긋거리며 놀던 토끼

 

반백 년 뒤에 내가 벙어리 여자의 멍자국을

큼직이 오려 붙인 의자에 앉아

다시 차를 마신다 해도

아프리카 사막에도 토끼가 있어서 어머니의 눈에 밟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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