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이 되었다
강해림
적막강산이 되었다 지례에 와서 적막의 첫줄을 읽는다 며칠 묵어가리라고 작정하고 사방 문 달린 흙방에 밤 깊어 잠자리에 누웠는데 내가 세상의 소리를 알아듣기 이전의 맑은 귀로 듣는 풀벌레 소리도 아니고 바람의 옹알이도 아닌 것이 문고리를 슬그머니 잡았다가는 놓고 가는 귀신도 내통한다는 침묵의 크나큰 말씀, 산 그림자 하나가 방금 막 문지방을 넘어 숨어 들어와 검은 두루마기며 대님 푸는 소리 그 넉넉한 팔베개 베고 잠이 들었다 방충망 너머로 임하호가 불나방 같은 촘촘한 눈을 뜨고 들여다본다 수몰 직전의 고가古家 십여 채를 이곳 산자락에 옮겼다는데 방금 막 수문을 연 물이 쳐들어오는 듯 서늘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다시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누가 이불을 끌어당겨 주셨다 나 이대로 적막강산과 백년해로해도 되겠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 2 ---病 /송재학 (0) | 2013.12.29 |
---|---|
부음/송재학 (0) | 2013.12.29 |
머풀러/문정희 (0) | 2013.12.29 |
자라/문성해 (0) | 2013.12.29 |
첫사랑/문태준 (0) | 2013.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