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잎 돌절구
장옥관
벌초하고 잠시 둘러본 옛집
감잎 수북한 장독대에 작은 돌절구 하나 숨어 있다
경상도 사투리처럼 우둘투둘한 돌절구
서툰 솜씨가 파놓은 못생긴 얼굴
두 손바닥으로 받쳐들고 보니
봉숭아 꽃잎 찧던 절구다
딸을 둔 아비가 틈날 때마다 파냈으리라
쌀보리도 콩도 아닌 봉숭아 꽃잎 찧으려 몇날 며칠 공들여 파냈으리라
돌은 기꺼이 날선 정을 맞았으리라
냇가에서 가장 둥글고 단단한 돌 골라 안고 오며
사투리보다 더 투박한 웃음
삼베 올 같은 웃음
검은 입술 위 흰 나비 되어 날아올랐으리라
웃음은 보조개가 되고 덧니가 되고
더러는 낮달이 되었으려니
분꽃도 과꽃도 없는 꽃밭 공이 없는 돌절구만 남아서
봉숭아 꽃물 아련한 그 마음 어루만지게 하느니
아득하여라, 여기 잠시 머물렀던
흰 나비들 도무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시인동네》2014년 겨울호
출처 : 대구시인협회
글쓴이 : 화양연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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