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스크랩] 봉숭아 꽃잎 돌절구 / 장옥관

김욱진 2015. 2. 3. 14:50

봉숭아 꽃잎 돌절구

 

장옥관

 

 

벌초하고 잠시 둘러본 옛집

감잎 수북한 장독대에 작은 돌절구 하나 숨어 있다

경상도 사투리처럼 우둘투둘한 돌절구

서툰 솜씨가 파놓은 못생긴 얼굴

두 손바닥으로 받쳐들고 보니

봉숭아 꽃잎 찧던 절구다

딸을 둔 아비가 틈날 때마다 파냈으리라

쌀보리도 콩도 아닌 봉숭아 꽃잎 찧으려 몇날 며칠 공들여 파냈으리라

돌은 기꺼이 날선 정을 맞았으리라

냇가에서 가장 둥글고 단단한 돌 골라 안고 오며

사투리보다 더 투박한 웃음

삼베 올 같은 웃음

검은 입술 위 흰 나비 되어 날아올랐으리라

웃음은 보조개가 되고 덧니가 되고

더러는 낮달이 되었으려니

분꽃도 과꽃도 없는 꽃밭 공이 없는 돌절구만 남아서

봉숭아 꽃물 아련한 그 마음 어루만지게 하느니

아득하여라, 여기 잠시 머물렀던

흰 나비들 도무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시인동네》2014년 겨울호

출처 : 대구시인협회
글쓴이 : 화양연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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