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장옥관
흰 비닐봉지 하나
담벼락에 달라붙어 춤을 추고 있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
사람에게서 떨어져나온 그림자가 따로
춤추는 것 같다
제 그림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것이
지금 춤추고 있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
허공에 힘껏 내지르는 발길질 같다
저 혼자서는 저를 들어낼 수 없는
공기가 춤을 추는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 드러내는 한숨처럼
돌이 있어야 물살을 만드는 시냇물처럼
몸 없는 것들이 서로 기대어
춤추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할퀴는
사랑이여 불안이여
오, 내 머릿속
헛것의 춤
<감상>
시인은 프로여야 한다. 아마추어 문청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 갱신이 필요하다. 변별성 없이 엇비슷하게 보법이 닮아가
는 젊은 시인들에게도 절망하지만 반성도 광기도 회의도 없이 안이한 시작으로 일관하면서 옛 이름값으로 연명하는 중견
과 원로 시인들에게도 실망할 때가 많다. 약간의 지명도가 생기면 금방 대가연하거나 도사연하는 모습에서 안일과 나태
의 전형을 본다. 예술은 끝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일신하고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시가 등
장하여 균질화되는 한국 시단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장옥관 시인의 작품은 신뢰가 간다. 과거의 허명에 눈이 멀어 밥인지 똥인지 구분 못하는 엉터리 사이비 시가 아니다. 쉽
게 다가오지만 정제된 구조와 조밀한 시적 정서의 방류가 독자를 감전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 흐트러짐 없이 다가오다가
어느 한 순간 쏟아내는 고압의 전류에 몸 떨게 한다. 팽팽하게 조여지던 시적 긴장의 둑방이 툭 터지면서 독자의 머리와
가슴이 허공에 붕 떠오른다.
“비닐봉지”는 허깨비 같은 삶의 다른 형상이다. “죽도록 얻어맞고 /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이며 “몸 없는 것
들”이다. 그것은 곧 사랑이면서 불안이고 떼어내기 힘든 삶의 허물이다. 한시도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불우이며 절망이다. 그러나 화자는 비닐봉지를 “헛것의 춤” 으로 마무리하면서 생의
새로운 음역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의 시처럼 흰 비닐봉지는 이른바 ‘비언어적 누설’이며 ‘몸이 흘리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화자의 또 다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일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삶의 양극을 응
시하면서 부정의 휘몰이로 내달리다가 보다 큰 삶의 전모를 조망하는 시가 “춤”이라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은 부질없는 헛
것이고 환상이지만.
-홍일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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