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스크랩] 무당개구리의 경우/ 복효근

김욱진 2015. 2. 3. 14:53

무당개구리의 경우

복효근


봄처럼이나 따뜻한 햇살에 무당개구리들 나와서 운다
운다는 것은 실은 오해다 짝을 찾는 구혼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찾아온 독한 꽃샘추위에 수십 마리가 얼어 죽었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할 것인가
짝짓겠다고 죽음을 불사한 철모르는 중생의 무명을 연민할 것인가

사람들은 모른다
유혈목이와 무자치가 함께 깨어나기 전
살아서 씨를 뿌리기엔 이 독한 꽃샘추위가 오히려 신혼방이었을 것을

황홀한 정사를 꿈꾸는 탐미주의자가 아니다
죽을힘으로 살얼음 낀 물 아래 무더기로 알을 슬어놓은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잘라야 할 탯줄은 아예 두지 않고
수유와 육아와 훈육을 생략해버린 냉혈의 족속이다

살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역설의 구차한 유언도 없는 어버이들의 집단 자살을
무당개구리 알들은 또록또록 눈 뜨고 지켜보았을 뿐

생과 사랑에 무슨 주석이 필요하랴
나도 저 냉혈동물의 산뜻한 끝을 꿈꾼 적 있다

봄날 물에 겹주름을 일으키며 무당개구리 올챙이
욜량욜량 악보를 그리며 헤엄치는 걸 보라

제 새끼에게 뜯기는 죽은 어미 무당개구리에겐 꽃무늬가 있다







1962년 전북 남원출생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마늘촛불』『따뜻한 외면』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등.

출처 : 13`시
글쓴이 : 사랑앵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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