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수라/백석

김욱진 2015. 9. 26. 18:20

                         수라

                          백석(1912~1995)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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