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 소리
노중석
산그늘 앉았던 자리 찬바람이 지나가고
깔리는 아둠 속을 수숫대 서걱인다
허공에 묻어둔 말씀 귀기울여 듣는 시간
길 건너 아파트 창에 머물다 가는 석양
저문 해의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고
구겨진 깊은 산 속에 눈이 내려 쌓인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저 순수의 풍경 속에
꽃향기며 새소리며 수를 놓고 있는 손길
은은한 범종 소리만 이 적막을 건너간다
<심사평>에서
팍팍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저마다 못 살겠다고 아우성들이다. 외국 가고 싶으면 주저 없이 가고, 가지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다 가지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 비만 걱정이 태산이면서도 끝없는 욕심의 바다를 헤매는 사람들의 불평소리다. 저마다 검지를 쫙 펴고 상대방을 가리키며 '내가 못 사는 것이 네 탓'이라는 중병의 탑을 쌓고 있다. 행복의 자산은 생각하지 않고 불행의 원인만 헤어리며 세상을 향해 눈을 흘기는 모습들이다.
수상작 노중석 시인의 '범종 소리'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수작이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점에, 생활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제16회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노중석 시인에게 심사위원 전원의 이름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김세환, 리강룡(글),민병도, 이정환, 이종문, 채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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