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돌에 대하여/이기철

김욱진 2016. 3. 22. 07:58

             돌에 대하여

                      이기철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작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진은영  (0) 2016.03.31
귀가/김사인  (0) 2016.03.31
깡통의 세계/변희수  (0) 2016.03.16
꽃샘/정희성  (0) 2016.03.07
깃/장하빈  (0) 201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