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조용한 혁명

숨바꼭질

김욱진 2016. 11. 9. 18:26

   숨바꼭질

 

 

어느 봄날 오후

앞 못 보는 스님 한 분, 흰 지팡이 짚고

차도와 인도 사이 몇 차례 오가다

간신히 보도블록 위로 올라서더니

술래처럼 손 내밀며 헛손질을 한다  

닿을 듯 말듯 곁눈질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 따라가다 허탕치고 돌아서서

옷깃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스님

멀찌감치서 한참을 숨어 보다   

나는 그 손 덥석 잡고

버스 정류소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바랑 속에 숨은 봄이 말 걸었다

나는 봄을 찾고 있는 중이요

잃어버린 지 오래된 나의 봄을 찾고 있는 중이요

술래가 된 나는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한 채

두리봉 터널 쪽으로 가는

108번 버스만 멍하니 바라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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