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한 말
-골방에서
자장면 한 그릇 천 원 할 때
세 그릇 값으로 시집 한 권 샀던 그 시절
나는 쫄쫄 굶긴 배 띄워놓고 배부른 척하다
신세타령만 하는 비렁뱅이
시인이 되고 말았다
책장에 꽂힌 해묵은 시 몇 편 거들먹거리며
유명시인 헐값에 다 팔아먹고
이젠 골방으로 밀려난 시의 집들마저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니
내게로 와 굶어죽은 시혼들이여
지렁이처럼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다
걸려 넘어지고 잘리고 짓밟힌 숱한 문장들이여
그대 못 다한 말, 못 다한 저녁의 풍금소리
언제쯤 울려 퍼질 것인가
골방에 골백번 더 처넣었다 건져낸 말
아, 누가 숨은 상상과 행간의 말들을 읽고 갈까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채 안 되는 나의 집 나의 시집
골방에서 말을 잃은 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