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
사윤수
입천장이 헐었다. 무얼 먹을 수 없는 정도여서 약을 바르고 하루를 굶었다. 그런데 배가 고파 도저히 안 되겠다. 농심 너구리가 먹고 싶었다. 뜨겁고 매운 라면을 헐은 입천장이 싫어할 텐데, 할 수 없다. 먹자. 이럴 때 먹고 죽을 값이라도 먹고 보자, 는 말을 쓰지. 너구리 아닌 너구리를 삶았다. 아픈 것 보다 맛이 앞서니 쓰린 것 쯤 견디며 먹을 만하다. 맛있다. 그러다가 견디다와 맛있다 사이, 그 방심의 순식간에 그만 캭! 사래가 들렸다. 마셨던 국물이 역류하며 목구멍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온다. 콧물과 눈물과 라면 건더기의 동시다발 속사포다. 연기에 질식한 너구리 꼴이 이럴까. 숨 쉴 틈이 없다는 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 계속 숨 못 쉬면 죽겠지? 이게 먹고 죽는 값이겠지? 라고 생각한다.
어미 펭귄이 새끼에게 먹이를 토해 줄 때 그 어미의 목구멍도 아플까? 고향에 돌아가 알을 낳으려고 강물을 역류하는 연어는 물살에 주둥이가 다 까지고 바위에 잘못 부딪혀 살점이 떨어져나가 죽기도 하지.
어쨌든 넘어갈 때는 아군처럼 좋던 라면 국물이 되돌아 나올 때는 적(敵)같구나. 연애도 절정일 때는 무엇을 입에 넣어도 맛있다가 실연에 혼자 돌아올 때는 맵고 쓰라리지. 그때도 눈물 콧물 나지. 사래 들리는 것과 실연은 다른데 쏟아지는 건 같군. 질감은 둘 다 실재군. 그러니까 라면 국물과 연애에는 역류 성분이 들어있어. 알면서도 사래가 가라앉으니까 남은 국물을 다시 먹네. 오물 뿜어낸 일을 금세 잊은 듯이 냄비 채로 들고 마시네. 그 참, 없는 너구리가 보고 웃고 가는 거 아닌지 몰라.
<문예바다> 가을호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박숙이 (0) | 2016.11.23 |
---|---|
코스모스/사윤수 (0) | 2016.11.14 |
11월/엄원태 (0) | 2016.11.09 |
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문인수 (0) | 2016.10.30 |
그랬으면 좋겠네/이시하 (0) | 2016.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