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 한 방울
이규리
꽃꽂이하는 사람이 말해주었다 꽃을 더 오래 보려면 꽃병에 락스 한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고......아무리 해도 그거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 싶으면서 그 말 왜 솔깃해지는지 머뭇거리다가 한 방울 꽃병에 떨어뜨렸다 거짓말처럼 뒷자리가 말끔해졌다 저러자면 누군가는 또 얼마나 참아야 했을까 너무 똑 떨어지는 이치에는 어딘지 사기치는 냄새가 난다 후각을 마비시키며 이룬 거사들, 달콤하게 던져준 당근들, 한 방울 떨어뜨려 애써 제자리를 확보하는 동안 꽃병 속 꽃은 어땠을까 락스 한 방울.......이 세계에서는 나를 더 연장하지 않기로 한다
―시집『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문학동네, 2014)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박지웅 (0) | 2017.09.08 |
---|---|
저녁눈/박용래 (0) | 2017.09.03 |
색/심강우 (0) | 2017.08.17 |
언제나 진심이라고 우기는/변희수 (0) | 2017.08.15 |
하루/강문숙 (0) | 2017.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