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울음터로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어디에도 의탁할 데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정진사가 묻는다. "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그렇고말고! 아니지, 아니고말고, 천고의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하지만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구는 정도였지. 그러므로 그들의 울음소리가 천지에 가득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네. 사람들은 칠정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이치에 딱 맞게 발현된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이 감정의 극한을 경험히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라네. 이 때문에 상을 당했을 때 처음엔 '에고 에고'따위의 소리를 내며 억지로 울부짖는 것이지. 그러면서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소리는 참고 억눌러 버리지. 그것이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꽉 뭉쳐있게 되는 것일세. 일찍이 한나라 때 가의는 울 곳을 얻지 못하다, 결국 참지 못해 별안간 황제의 궁궐을 향하여 한마디 길게 울부짖었다네.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괴이했겠는가".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함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려... ...". p48~49
낭송 열하일기중에서
「호곡장론」은 ‘통곡할 만한 자리’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문집 『연암집(燕巖集)』 제11권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도강록(渡江錄)」의 7월 8일자 일기다.
그러고보니 주위를 둘러보면 크게 소리내어 울어볼만한 곳이 없다.
요동땅에 가보고싶어졌다. 그 곳에서 크게 한번 통곡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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