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적소단장謫所短章ㅡ골방에서/심강우

김욱진 2018. 1. 17. 20:12

       적소단장謫所短章ㅡ골방에서

          심강우

 

시를 쓴다고 방을 나가지 않은 날이 많았다

걱정하는 사람의 말이 달개비 꺾이는 소리로 번졌다

더러 내가 흩어 은 말들이 구름을 이루고 떠돌다

한낮의 소나기로 다녀갔으나 처마가 깊어 젖지 않았다

한갓되이 울 밖의 소문에 귀를 담그지 않으리

온몸의 감각세포가 문풍지가 되어 딜빚만이 우련했다

문고리 거는 기척에 모시나비 한 마리 기웃거리다 가고

내 속을 흝은 기억들이 뒤란의 동백으로 붉어질 때

삿갓을 닮은 섬에서 글을 썼다는 당신을 생각하곤 했다 

당신 역시 붓을 들었을 때는 풍향風向을 묻지 않았으리

하늘은 당신의 뒷머리를 누르고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깊이 눌렀으리

밤낮 당신의 호흡을 필사한 후박나무가 푸른소매를 흔들고

바늘땀 뜨듯 골무꽃은 자색 무릎걸음으로 안부를 물었겠지

내 방 주위에서 파도소리가 들린 건 우연이 아니다

오랜만에 문지방을 넘어선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선 곳은 벼랑끝이었섬 둘레는 출렁이는 수평이었다

나는 좀더 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가 버린 시어詩語들이

수평의 검은 수위를 높였다 물살이 되어 아프게 섬을

철썩거렸다 이대로 섬이 잠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 파도가 그치고 바다가 육지가 되고 내가 살던 방이

검은 지층이 되었을 때 우연히 닿은 어떤 인연

퍼렇게 박힌 시집 한 구를 발견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ㅡ2017 시와 반시 겨울호 발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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