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빈의 시와 함께]
자장면 한 그릇 천 원 할 때
세 그릇 값으로 시집 한 권 샀던 그 시절
나는 쫄쫄 굶긴 배 띄워놓고 배부른 척하다
신세타령만 하는 비렁뱅이
시인이 되고 말았다
책장에 꽂힌 해묵은 시 몇 편 거들먹거리며
유명시인 헐값에 다 팔아먹고
이젠 골방으로 밀려난 시의 집들마저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니
내게로 와 굶어죽은 시혼들이여
지렁이처럼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다
걸려 넘어지고 잘리고 짓밟힌 숱한 문장들이여
그대 못 다한 말, 못 다한 저녁의 풍금소리
언제쯤 울려 퍼질 것인가
골방에 골백번 더 처넣었다 건져낸 말
아, 누가 숨은 상상과 행간의 말들을 읽고 갈까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채 안 되는 나의 집 나의 시집
골방에서 말을 잃은 이 밤
―시집 『참, 조용한 혁명』(시문학사, 2016)
------------------------------------
시의 집을 짓는 자여! 시집 한 권과 자장면 세 그릇을 맞바꾸던 시절에 시장기 속여 가며 어렵사리 시인이 되었으나, 시집 한 권이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채 안 되는 오늘의 황폐한 현실 앞에 그만 허탈감에 빠지는가? 이 밤도 캄캄한 골방에서 "내게로 와 굶어죽은 시혼들"을 부둥켜안고 '참, 조용한 혁명'을 꿈꾸는 비렁뱅이 시인이여!
시인은 왜 '골방'과 같은 어둡고 구석진 공간 속으로 스스로를 은둔시키는 걸까? 그건 '타메이온'(골방)이라는 은밀한 대화와 진리의 방에 갇혀 "걸려 넘어지고 잘리고 짓밟히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숨은 상상과 행간의 말들"을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시의 산실인 '골방'은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삼가서 웅녀로 환생한 '동굴'이나, 새가 알에서 깨어나고 날갯짓을 익히는 '둥지'와 다름없는 통과의례(通過儀禮) 공간이다. 따라서 '골방'은 "못 다한 말"과 "못 다한 저녁의 풍금소리"가 울려 퍼지는, 재생과 부활의 장소인 셈이다.
장하빈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문화부 jebo@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