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대한 스눕적 접근과 스누핑의 시 읽기
김기덕 시인
당신의 흔적이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늘어놓은 다양한 단서들을 통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힘 『스눕(Snoop)』이라는 책을 통해 저자 샘 고슬링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나 소지품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스눕(Snoop)』은 ‘기웃거리다’, ‘염탐하다’라는 뜻의 인간에 대한 엿보기 심리분석서이다.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상대를 미리 알면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누핑(snooping)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인간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자의 돌출적인 연구결과였다. 그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는 흥미로운 생각을 하면서 스누핑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스누퍼들은 작은 단서들을 통해 치밀한지, 가족적인지, 사교적인지, 지적인지와 같은 성격이나 삶의 유형을 알아낸다. 심지어 과거 그 사람이 무엇을 했으며, 현재 삶을 어떤 방식으로 꾸려나가는지도 찾아낸다.
저자인 샘 고슬링 박사는 이 책에서 특정 개인과 관련된 장소를 통해 개인의 성향이나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며, 직관과 통찰에 가까운 스누핑 활동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며, 예술이라고 말한다. 생활공간에 놓여 있는 다양한 물건은 개인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상징적 장치다. 스누핑은 마술과 같은 것이 아니라 사물로부터 의미를 유추해 내려고 하는 심리적 탐구이다. 만약 처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각종 정보(헤어스타일, 패션, 처음 꺼낸 말 한 마디, 악수, 표정)를 통해 상대의 내면을 파악하고 타인의 이미지를 마음에 새기게 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나 상징의 단서를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서부영화 추적 장면에서 말의 발자국에 손을 대보고, 분비물의 온기나 냄새를 분석하여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감각의 단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내다보듯, 시에서도 감각적 표현의 단서를 통해 그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의미와 상징성을 파악할 수 있다. 시는 창작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설명되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내면과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이미지나 문학적 단초들을 심층적이며 통일성 있게 몽타주하여 숨은그림찾기 하듯 스눕의 단서들을 문맥 속에 감추어두는 것이다. 스누퍼들이 단서를 통해 상황과 내면을 파악하듯 독자들도 시에 나타난 표현들을 통찰하여 의도하는 내용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한다. 시의 표면적 내용만을 본다면 그는 훌륭한 문학적 스누퍼가 될 수 없다. 또한 시인으로서 주제에 부합한 스눕의 단서들을 작품 속에 감출 수 없다면 차원을 논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누퍼의 역량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짝을 찾아야 하고, 위험을 판단하고 사냥하며 살아야 하는 환경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능력이라고 한다. 고급독자는 더 높은 스누퍼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하급독자에 맞춰 설명적인 시를 쓸 필요는 없다. 시는 문학의 정점에 있으며, 차원 높은 상징세계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 속엔 한 시인의 시세계를 말해주는 편린들이 남아있다. 그 단서들을 통해 시인의 내면과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시문학』9월호에 실린 시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수눕적 조직의 시를 만날 수 있었다.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의 시 현장을 엿보면서 그 세계를 경험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눈에 띈 시들은 이근호의「덕소에서 흐르다」와 김욱진의「시, 생전 보도 듣도 못한」이었다.
예봉산 검단산이 물 밑으로 손을 맞잡고
강물은 스스로의 절제와 경계 안에서
넓이와 깊이를 다스리면서
서로를 버리고 버리면서 흐른다
바다가 되려면 버려야 하고 잊어야 한다
앞 물결의 뒷모습과 뒷물결의 앞모습이
더 이상 그리움으로 엉기지 않는다
거슬러 오르내리는 철새들의 자맥질 밑으로
덕소에서 강물은 이제 서서히 흐른다
덕소에서 광나루 쪽을 천천히 바라보며
심호흡으로 몸을 가다듬는다
풍속마을 낮은 능선과 그 너머 아차산이
어제의 기억을 가려주고 있다
지척인 서울이 두고 온 고향처럼 아득할 때는
노을진 산너머 저 구름 아래에서의
지난날은 모두 잊어야 하고 버려야 한다
강물 따라 흐르다 멈추어 서면
덕소의 저녁 강물은 그리움으로 일어선다
-이근호, 「덕소에서 흐르다」 일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몸을 이루는 두물머리에 대한 시는 많아서 「덕소에서 흐르다」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한 몸을 이뤄 뛰어내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곳이 덕소라는 데 묘미가 있다. 여기에서 덕소는 장소성을 갖는 스누핑의 단서가 된다. 이근호 시인에게 덕소는 특별한 곳이다. “강물은 멈춰 서지 않고 대열을 짓는다”에서 시인은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군 생활을 한 것 같다. 또한 “풍속마을 낮은 능선과 그 너머 아차산이 어제의 기억을 가려주고 있다”에서 추억이 많은 곳이라는 것과, “지척인 서울이 두고 온 고향처럼 아득할 때는”에서 덕소가 고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웬만한 스누퍼들은 짐작할 것이다. 한때 덕소에서 흐른 시간들은 그리움과 추억의 강물이며,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하지만 위의 시에서 “바다가 되려면 버려야 하고 잊어야 한다”는 말을 통해 큰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떠나온 고향을 잊고, 그리움으로 엉겨있는 과거에 더 이상 얽매일 수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강물은 “스스로의 절제와 경계 안에서 넓이와 깊이를 다스리면서 서로 버리고 버리면서 흐른다”고 한다. 바다가 되려면 강물의 깊이와 넓이를 버리고 그 이상의 새로운 사고로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덕소에서 삶을 시작했고, 정신을 차렸고, 철이 들어 덕소가 그리움으로 남았다. 강물은 시인의 정서가 흘러온 덕소이며, 바다는 당도하여 정착한 대도시 서울을 의미한다. 강물이 거슬러 오르지 못하듯 서울을 벗어나 다시 덕소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지난날은 잊어야 하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면 문득 덕소의 추억이 떠오르고 진한 그리움에 젖게 됨을 표현한다.
스누퍼들이 침실에 있는 베개와 시트, 머리카락, 조명과 청소상태, 벗어놓은 양말 등과 같은 단서들을 통해 한 사람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 사랑과 인생관, 성공을 스누핑하듯 한 편의 시 속에 담긴 이미지들과 문맥에 숨겨진 의미들을 추적해 한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집 한 권 냈다고 팔십 평생 땅뙈기 일구고 산 오촌 당숙께 보내드렸더니 달포 만에 답이 왔다 까막눈한테 뭘 이래 마이 지어 보냈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우린 시래기 국만 끓여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허기야,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 아무 맛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 봐도 그렇고 입맛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먹으면 좋것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 이전에 장날마다 약장수 영감 따라 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고 한 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 시방도 어데서 옷고름 풀듯 말듯 애간장 태우며 산삼뿌리 쏙 빼닮은 만병통치약 팔고 있나 모르것다 그나저나 니 지어 논 시 닭 모이 주듯 시답잖게 술술 읽어보이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 고운 치매 들었다 하이 내 맴이 요로코롬 시리고 아프노 시도 때도 없이 자식 농사가 질이라고 했는데 풍년 드는 해 보자고 그랬는데
김욱진의 시는 일평생 농사만 지은 오촌 당숙의 말을 빌어서 무가치한 시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시래기 국만 끓여 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라는 말에서 양식이 되지 못하는 시를 쓰며 사는 배고픈 시인의 현실을 드러낸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에서 알아주지 않던 시래기가 요즘 몸에 좋다고 금값이듯, 지금은 알아주지 않아도 삶의 입맛이 없을 때 “한 이파리 넣고 푹 삶아 먹으면 좋것다”에서처럼 시도 금값이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소망이 담겨 있다. “약장수 영감 따라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고 한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는 어디서 만병통치약 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예술세계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와 시인의 어머니로 표현되는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와의 연관성을 만든다.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가 농사일만은 아닐 터, 여기에서 고도의 스누퍼라면 창작자의 내면을 보는 능력을 발휘하여 한 편의 시가 탄생되기까지 시 쓰기에 헌신하는 창작자의 정성 또한 그러함을 알아채야한다. ‘청춘과부’는 ‘시인’과 겹쳐지고 ‘시집’은 시집(詩集)과 포개져 있다. 청춘과부가 되어 재가도 하지 않고 희망으로 키웠을 아이가 겨우 시인이 되어 보내 온 시래기만도 못한 시들을 보며, 자식 농사가 제일이라던 사람이 치매가 들었다는 사실에 연민의 아픔과 함께 순탄하지 않은 예술가의 삶을 내다보고 있다. “풍년 드는 해 보자”는 것은 자식이 잘 된 뒤에 떳떳한 모습으로 만나겠다는 의미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함을 안타까워한다. 이 시는 ‘시래기’, ‘시답잖게’, ‘시집’, ‘시리고’, ‘시도 때도’와 같이 첫 음이 동일한 낱말들을 구사하여 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 단서들을 들추어보면 시인의 현실적 비애가 깊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시는 고급 예술에 속하여 특정 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다. 조선시대의 시가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시조가 높은 지식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층의 예술이었듯 시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은 아니다. 시가 선조들의 출세를 위한 등용문이었듯 오늘날에도 입시나 취직의 요건이 된다면 엄청난 인기와 명예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현실은 시인들이 먹고 살기조차 불가능한 사막이다. 그렇다고 시가 돈이나 인기를 구걸해서도,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높은 차원의 예술성을 버려서도 안 된다. 시인이나 독자 모두가 예술적 깊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스누퍼들이라면, 시는 고도의 정신적, 예술적 스누퍼들이 누릴 수 있는 성찰과 정서적 아타락시아여야 한다.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 주관적 정서를 대입시킨 시들은 독자들을 쉽게 공감시킬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막을 수도 있다. 은유적이며, 유사안식(類似眼識)의 시각에서 접근한 시들은 상징의 복잡성이나 의미의 깊이를 캐는 문학적 스누핑보다는 정서적 맛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SNS시대에 맞춰 짧고 기형적인 시들이 유행하기도 하지만, 한 번의 악수를 통해 체온과 힘, 건조함, 감촉, 쥐고 있는 시간 등을 통해 그의 내면과 성격, 사고방식, 현재의 건강상태까지 읽을 수 있는 스눕적 시를 만나고 그 무의식의 내면을 추적해 갈 수 있다면 그 쾌감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성환의 「금단현상」은 시의 뒷부분이 관념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충분히 스눕적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다.
타이머가 부착된 거리의 간판이
발광(發光)을 준비하는 사이
밤은 밤대로
사람들의 그림자 벗겨
어둠 모으기 시작하고
나는 나대로
당신 없는 공포에 시름시름 쇠약해진다
한번 가버리면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레일을 재우지 않는 막차처럼
내 마음 한복판 지나가면
처음 했던 말들
창밖 서성이던 별들
울음 밟으며 돌아갔던 밤들
또다시 깊어가는데
나만 깨어나 당신에게
멈추어 서있다
-정성환,「금단현상」일부
금단현상은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물질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사용 양을 줄일 경우 발생하는 생리적, 심리적, 행동적 반응으로 우울, 불안, 수면장애와 같은 증상을 불러온다. 정성환의 금단현상의 원인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찾아오는 증상으로, 거리의 간판은 발광을 준비하고, 밤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벗겨 모으기 시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공포에 시름시름 쇠약해진다. “한번 가버리면/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끝내/ 레일을 재우지 않는 막차처럼”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가버렸고 연락 한 번 없지만 가슴엔 레일의 진동처럼 사랑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잠들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내 마음 한복판 지나가면”은 사랑할 때의 상황이며, 그때 했던 말이나, 지켜봤던 주변의 별들이나, 슬픔에 젖던 밤마저 잊어 가는데 시인 자신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히지 않는다. 간판과 밤과 나와의 관계는 서로 소통할 수도, 위로 받을 수도 없는 개별적 관계이다. 곧 세상에는 자신의 외로움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음을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마음 한복판 지나는 것은 그리움이며, 떠오르는 무수한 추억인데, 그 추억들은 처음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과 기다리느라 창밖을 서성이던 일과 눈물 흘리며 돌아가던 아픔들이다. 밤과 간판, 막차와 레일, 창밖과 별들이라는 스눕적 단서들을 배치해 불면의 금단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새벽 비둘기는 어느 부두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
엊그제 삼성의료원 어느 빈소에서
빈객인
심상운 시인은
양준호 시인 시에서는 꽃이 많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꽃꽃하면 그만 아닌가
미당선생께서 가르쳐준 꽃 비기는
어떤 뜻이 계셨을까
이 새벽
새벽 비둘기 떼
인천 배선옥시인은 내 시
존재서설存在序說·27
-바다는잠시분홍빛자궁을열었다가닫았다
꽃이울고서갔다를
아름답고 서러운 시라고 했는데
-양준호,「여명의 꽃」일부
식구들 툇마루에 모여 모기에 물리고
막내는 모기장 안에서 달콤한 꿈을 꾸는데
밤늦게 귀가한 젖가슴 큰 누나는
형제들 몰래 모기장 옆에 눕고
풀벌레 소리에 잠을 깬 막내가
오강을 찾다가 누른 누나의 배
아악 비명 소리 들리고
놀란 형제들 일어나 전등을 켰고
막내의 어정쩡한 모습에
형제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였고
즐거운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작은형 왈 너 누나 젖가슴 만진 것 아니여?
-정신재,「양철지붕 위의 빗소리」일부
위의 두 시 또한 사실적인 일을 바탕으로 말하듯이 시를 써서 밋밋하고 깊이가 부족하게 느낄 수 있으나 여러 스눕적 단서들을 통해 보면 시인의 깊은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양준호의 「여명의 꽃」은 “새벽 비둘기는 어느 부두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로 시작해서 “어/디/로/가/나”로 마무리 짓는다. 새벽 비둘기는 제목과 같이 여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둘기나 사람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꽃처럼 왔다가 꽃처럼 간다. “-바다는잠시분홍빛자궁을열었다가닫았다/꽃이울고서갔다를” 배선옥 시인은 아름답고 서러운 시라고 했는데 이 또한 짧은 꽃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고, 미당 선생이 가르쳐준 꽃의 비기일 것이다. “자부심 자부심의 허상 시인이라”에서 잘난 시인뿐만 아니라 인생 모두는 허상의 존재임을 말한다. 이 시의 가장 큰 단서는 ‘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꽃 아닌 것이 없다. 아름답게 피었다가도 예외 없이 질 수 밖에 없는 허상의 존재이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살아가는 새벽 비둘기 또한 시인 자신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단서는 ‘빈소’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지만, 실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본원적인 물음을 자신과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적인 시인들의 이름을 인용하고, 사실적 장소를 사용하여 쓴 시이지만, 상징성이 높은 시이다. 시인과 등장인물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 있고, 확실한 주제의식이 나타난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 속에 놓인 단서들을 추적하다보면 상당한 깊이의 스누핑이 가능하다. 의식적으로 쓴 시이지만, 그 안엔 무의식의 서운함이 배어있다. 끝내는 지고 말 꽃이지만, “꽃꽃하면그만 아닌가”에서 ‘꽃꽃’은 이중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하나는 꽃다운 꽃이요, 다른 하나는 꽃으로서 꽂꽂함의 의미다.
또한 정신재의 「양철지붕 위의 빗소리」는 집안에서의 단순한 에피소드를 옮겨 적은 듯하지만, 하나하나 인물들의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막내는 귀염을 받아 모기장 안에서 천진난만하게 잠들고, 풀벌레 소리에 깨어 오강을 찾다가 허연 누나의 배가 오강인 줄 알고 배를 누른다. 아마도 막내는 시인 본인이 아닌가 싶다. 젖가슴 큰 누나는 생계를 위해 일을 다녔는지 밤늦게 귀가하는데, 형제들이 깰까봐 모기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고(자리가 없었을 수도 있다) 몰래 모기장 옆에 눕는 걸로 보아 헌신적인 것 같다. 작은 형은 농담하는 걸 보면 짓궂은 성격인 것 같고, 큰형은 “누나가 좋아서 그런 거여?” 라는 말로 보면 긍정적 사고를 가진 것 같다. “아니랑께 오강 찾다가 그랬당께로”의 문장에서 수줍음이 많은 막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에서 볼 수 있는 사실과 오해의 관계는 스눕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주어진 단서들을 통해 정확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는 스누핑에서 잘못된 판단이 되는 이유는 숨겨진 단서를 찾지 못했거나, 과유불급의 지나친 정보로 인해 판단이 어려울 때이다. 또한 고정관념으로 인한 선입관적 접근이다. 올바른 통찰을 가로막는 구체적 이유를 든다면 첫인상은 강력한 최면이 되어 다른 판단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며, 엉뚱한 단서에서 의미를 유추했을 때, 그리고 상관없는 단서를 활용했을 때이다. 또한 틈새에 맹점이 있다는 점인데, 단서가 되는 두 가지의 다른 차원 중에서 제대로 결정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이다.
위의 시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부재중이던지 일찍 여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버지가 없었기에 요란한 집안이 양철지붕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집안의 평정은 어머니 역할이었다. 오늘도 생생한 어머니의 음성, 그리고 가족들의 농담과 웃음소리가 시골집에 양철지붕 위의 빗소리로 들린다. 깊은 상징성이나 표현의 묘미가 적은 것 같지만 실은 제목 ‘양철 지붕 위의 빗소리’에 단서를 숨겨두고 있다. 한여름의 양철지붕은 불을 달군 듯 뜨겁기 때문에 소나기 내리는 빗소리는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이라서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지만, 가족들의 농담과 화기애애한 웃음소리와 애정 어린 어머니의 육성은 늘 시원한 빗소리처럼 시인의 마음에 생생히 남았다. 하나의 단서를 찾아냄으로써 이면에 감춰진 감정의 영역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마삭줄이 허공에다 길을 내고 있다
검붉은 사막거미의 긴 손가락 같은 마삭줄의 몸은 둥글고 작은 초록 잎새를 S.O.S. 치듯이 서로 마 주보게 둘 씩 붙이면서 사막 같은 세상 쪽으로 실낱 같은 생명 줄을 내보이고 있다
가끔 예멘 난민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 같은, 두고 온 고향이 생각나면
사막에도 물 흐르듯이 좁쌀 만한 하얀 꽃잎을 허공에다 뿌리기도 한다
마삭줄의 몸은 허공이다
-이춘하,「마삭줄」전문
이춘하의 「마삭줄」은 허공에다 길을 내고 있는 강한 생명력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척박한 사막에 사는 검붉은 사막거미와 마삭줄은 곧 시인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멘 난민처럼 아무 연고도 없고, 근거도 없는 낮선 곳에서의 새로운 정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이며,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삭줄의 몸은 둥글고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초록 잎새를 S.O.S. 치듯이 서로 마주보게 둘 씩 붙이면서”에서 꿈과 희망의 길을 내며, 힘을 모아 조심스럽게 사막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삭줄의 잎은 서로 마주보며 자라고, 꽃은 바람개비 모양으로 피어난다. 바람개비처럼 바람을 타고 돌 것 같은 하얀 꽃은 사막 같은 절망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공중으로 부상할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사막에도 물이 흐르듯이 좁쌀 만한 하얀 꽃을 허공에다 뿌리기도 한다” 라고 표현한다. 허공은 근거나 기반이 부족한 현실적 상징이기도 하지만, 땅의 속된 차원을 초월한 상승적 의지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마삭줄은 허공에다 길을 내고, 길을 낸 마삭줄은 결국 허공이 된다. 허공은 새로운 세상이며, 땅의 차원을 달리한 시인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상태나 결과이지만, 이 또한 허공의 한계성 때문에 허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 「마삭줄」을 마삭줄의 생태와 작가와의 삶으로 접근한다면 1단계적 스누퍼의 시 읽기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문제나 철학적 접근을 한다면 2단계적 스누퍼의 시 읽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종교적, 추상적, 무의식적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면 3단계적 고차원의 스누핑이라 할 것이다. 은유적 시각, 상징적 시각, 복합적, 다층적 시각의 상징세계를 읽을 수 있는 스누퍼의 능력이 필요하다.
스눕을 통해 상대를 꿰뚫어 보듯 시인은 언어의 단서들에 대한 스눕을 통해 시의 세계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스눕으로 읽을 수 있는 이미지나 사건들의 배치가 이루어진 시를 써야한다. 문학적 스누퍼는 사물의 단서만이 아니라 언어의 단서, 무의식의 단서까지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하는 주제를 향해 스눕할 수 있는 설정의 단계로 나아가 시를 써야 한다.
시의 스눕적 해석은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 무의식은 오랜 시간 화석처럼 굳어진 것이다. 짧은 시간 속에서 인위적인 변형이 가능한 것은 가짜단서들로 스누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깨끗하게 정돈된 책장은 가짜정보일 수 있다. 철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유명 철학책들을 임시로 꽂아놓을 수도 있고, 청결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하지 않던 청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누퍼들은 화석처럼 책 안에 남겨진 밑줄을 보거나 메모들을 본다. 또한 방바닥의 찌든 때를 보고, 침대 밑의 은밀한 구석을 살핀다. 의식은 감출 수 있고, 순간에 변형시킬 수 있지만 무의식은 쉽게 조작되지 않는 부분이다. 스눕의 진정한 가치는 쉽게 변형이나 조작될 수 없는 부분을 보는 것이며, 의식으로 감출 수 없는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무의식에 대한 접근으로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들 수 있다. 프로이드는 꿈속에서 우리들의 가장 비밀스런 욕망이 드러난다고 본다. 이러한 꿈들이 나타내는 것 중 하나는 무엇보다 주저 없이 분출되는 성적인 욕구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자아에 대한 열쇠는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어떤 곳에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의식이다. 단지 우회를 통해서나 확실치 않은 경로를 통해서만 약간의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의식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꿈은 충동해소에 대한 억눌린 욕구 때문이며,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의미를 풀어주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시문학』 9월호에 실린 시들을 스눕적 방법으로 살펴보았다. 시속에 인위적으로 제시된 이미지와 스토리, 정서 그리고 다양한 논리들을 접하면서 한 시인의 내면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꿈의 해석은 일률적이지 않으며 통일적이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진 이미지나 사건들에 대한 조합으로 이루어지지만, 시의 스눕적 해석은 정해진 주제 안에서의 통일적인 이미지나 사건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어쩌면 더 인위적이고, 가짜정보들이 많은 속에서 시인의 내면을 살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시세계는 꿈보다도 더 해석하기 어렵고 접근하기가 난해할 수도 있다. 더 정확한 단서들을 찾고, 숨겨진 단서들을 통해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시세계를 단숨에 통찰할 수 있는 문학적, 예술적 스누퍼가 되기 위해서는 세밀한 관찰력과 더 깊은 학문적 수양이 있어야할 것이다. 스눕적 장치가 없는 시는 하나도 없다. 좋은 시는 스누핑의 맛과 깊이가 다를 뿐이다. 진정한 스누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을 기대한다. 직관을 넘어선 스누핑의 향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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