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해설

2018 시문학 9월호 이달의 문제작-김욱진『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김욱진 2018. 10. 2. 09:35

시에 대한 스눕적 접근과 스누핑의 시 읽기-김기덕 시인


시집 한 권 냈다고

팔십 평생 땅뙈기 일구고 산 오촌 당숙께 보내드렸더니

달포 만에 답이 왔다  

까막눈한테 뭘 이래 마이 지어 보냈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우린

시래기 국만 끓여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허기야,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

아무 맛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 봐도 그렇고

입맛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먹으면 좋것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 

이전에 장날마다 약장수 영감 따라 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

한 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

시방도 어데서 옷고름 풀듯 말듯 애간장 태우며

산삼뿌리 쏙 빼닮은 만병통치약 팔고나 모르것다

그나저나 니 지어 논 시 

닭 모이 주듯 시답잖게 술술 읽어보이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

고운 치매 들었다 하이

내 맴이 요로코롬 시리고 아프노

시도 때도 없이 자식 농사가 질이라고 했는데

풍년 드는 해 보자고 그랬는데

                                      -김욱진, 「시, 생전 듣도 보도 못한」전문


  김욱진의 시는 일평생 농사만 지은 오촌 당숙의 말을 빌어서 무가치한 시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시래기 국만 끓여 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라는 말에서 양식이 되지 못하는 시를 쓰며 사는 배고픈 시인의 현실을 드러낸다. "요즘은 시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에서 알아주지 않던 시래기가 요즘 몸에 좋다고 금값이듯, 지금은 알아주지 않아도 삶의 입맛이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 먹으면 좋것다"에서 처럼 시도 금값이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소망이 담겨 있다. "약장수 영감 따라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고 한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는 어디서 만병통치약 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예술세계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와 시인의 어머니로 표현되는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와의 연관성을 만든다. "물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가 농사일만은 아닐 터, 여기에서 고도의 스누퍼라면 창작자의 내면을 보는 능력을 발휘하여 한 편의 시가 탄생되기까지 시 쓰기에 헌신하는 창작자의 정성 또한 그러함을 알아채야 한다. '청춘과부'는 '시인'과 겹쳐지고 '시집'은 시집(詩集)과 포개져 있다. 청춘과부가 되어 재가도 하지 않고 희망으로 키웠을 아이가 겨우 시인이 되어 보내 온 시래기만도 못한 시들을 보며, 자식 농사가 제일이라던 사람이 치매가 들었다는 사실에 연민의 아픔과 함께 순탄하지 않은 예술가의 삶을 내다보고 있다. "풍년 드는 해 보자"는 것은 자식이 잘 된 뒤에 떳떳한 모습으로 만나겠다는 의미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이시는 '시래기', '시답잖게', '시집', '시리고', '시도 때도'와 같이 첫음이 동일한 낱말들을 구사하여 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 단서들을 들추어보면 시인의 현실적 비애가 깊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시는 고급 예술에 속하여 특정 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다. 조선시대의 시가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시조가 높은 지식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층의 예술이었듯 시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은 아니다. 시가 선조들의 출세를 위한 등용문이었듯 오늘날에도 입시나 취직의 요건이 된다면 엄청난 인기와 명예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현실은 시인들이 먹고 살기조차 불가능한 사막이다. 그렇다고 시가 돈이나 인기를 구걸해서도,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놓은 차원의 예술성을 버려서도 안 된다. 시인이나 독자 모두가 예술적 깊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스누퍼들이라면, 시는 고도의 정신적 예술적 스누퍼들이 누릴 수 있는 성찰의 정서적 아타락시아여야 한다.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 주관적 정서를 대입시킨 시들은 독자들을 쉽게 공감시킬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막을 수도 있다. 은유적이며, 유사안식(類似眼識)의 시각에서 접근한 시들은 상징의 복잡성이나 의미의 깊이를 캐는 문학적 스누핑보다는 정서적 맛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SNS시대에 맞춰 짧고 기형적인 시들이 유행하기도 하지만, 한 번의 악수를 통해 체온과 힘, 건조함, 감촉, 쥐고 있는 시간 등을 통해 그의 내면과 성격, 사고방식, 현재의 건강상태까지 읽을 수 있는 스눕적 시를 만나고 그 무의식의 내면을 추적해 갈 수 있다면 그 쾌감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