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열대야/김신용

김욱진 2018. 8. 5. 11:38
             
                    열대야

                     김신용

  

  그 반딧불이가 찾아온 날은, 캄캄한 밤이었다

  창문 다 열어놓고, 간신히 걸친 등거리도 벗고

  거실 마루에 누워 잠 청하던 밤이었다

  처음 나는 그것이 어디서 반사된, 아니, 내 비문증 때문인 줄 알았다

  먼 곳에서 켜진 성냥불처럼 반짝이던 것

  어두운 풀숲 속의 작은 달개비 꽃잎같이 피어 있던 그것

  나는 그 飛蚊을 지우려고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빛이었다

  창문 위에서 천정으로, 그곳에서 다시 벽으로 옮겨가며 반짝이는 것

  저것이 무엇일까? 잠결에, 어렴풋이 뜬 눈으로

  그 빛의 움직임을 한참이나 지켜본 후, 비로소 나는 알아차렸다

  반딧불이라는 것을― . 내가 곤충도감이나 형설지공이라는 故事에서나 들어본

  그 반딧불이라는 것을― .

  세상에, 반딧불이라니! 태어나 처음 본 반딧불이가 집안으로 들어와,

  저렇게 맑고 은은한 빛을 켜놓고 있다니!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빛을 머금고 있다니!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망막에 오로라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이 세상의 빛이 아닌 것 같은, 그 빛을 지켜보았었다

  암호 같은, 무슨 상형의 기호 같은, 그 빛을 지켜보았었다

  캄캄한 밤, 이 세상과 절연한 듯한 숲 속의 집

  불이란 불 다 끄고, 별마저 지워진 이 깊은 밤에

  반딧불이가 나타나, 저렇게 어두운 허공에 맑은 형광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니!

  한 줄기 맑은 물줄기의 길이, 숲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너무도 시원히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였다

  그러나 내 몸 속에 켜진 불로 밤새 잠 못 이룬 밤이었다

  너무도 무더운 여름날의 밤이었다 

       

               시집 '도장골 시편'(천년의 시작, 2007)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김재진  (0) 2018.08.05
뜨거운 밤/안도현  (0) 2018.08.05
머리맡에 대하여/이정록  (0) 2018.08.05
거룩한 저녁 나무/황지우  (0) 2018.07.24
바람개비/김윤현  (0) 2018.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