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밤
안도현
아,고 잡거들이 말이여, 불도 한점 없는 거 뭣이냐 깜깜한 묏등 가에서 둘이서 불이 붙어가지고는 누가 왔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쳐다보는지 모르고 말이여, 여치는 싸랑싸랑 울어댓쌓는디 내가 어떻게나 놀라부럿는가 첨에는 참말로 귀신들이 아닌가 싶어 대가리 털이 바짝 서두만 가만히 본께 두 년놈들이 깨를 홀라당 벗고는 메뚜기 같이 찰싹 붙어 가지고는 일을 벌이는디, 하이고매 숨이 그만 탁 막혀 나는 말도 못하고 소리도 못지르겠고 그런다고 좋은 구경 놔두고 꽁무니 빼기도 그렇고 마른침을 꼴딱 삼켜가면서 눈알이 빠져라 쳐다보는디 글쎄, 풀들이 난데없이 야밤에 짓뭉개져 가지고는 푸르딩딩 멍든 자죽처럼 짓뭉개져 가지고는 야한 냄새를 피워올리는 바로 고것들이 무슨 죄일까 싶어 나 참 별 생각도 다해봤는디 말이여, 그때 말이여 반딧불 하나가 눈을 깜빡깝빡하면서 싸가지 없이 나를 빤히 보고있었던 거 아니겄어, 한마디로 챙피해두만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지가 다 봤을 거 아녀, 처음부터 끝까지 저도 다 보고 있었으면서 말이여, 하이고매.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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