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나는 개에게 줄을 세우지 않았으나/이진우

김욱진 2018. 8. 9. 09:44

  나는 개에게 줄을 세우지 않았으나

   이진우

 

개새끼들이 알아서 줄을 선다

개새끼들만 아는 개새끼들의 서열

제일 크고 우락부락한 개새끼

눈치 잘 보고 토실한 개새끼

토실한 놈 눈치 보는 개새끼

눈치 보는 개새끼를 감시하는 개새끼

그 뒤에 빌어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운 개새끼

 

어떤 개새끼에게 밥을 먼저 줄까

오라, 저 맨 뒤에 비루먹은 개새끼

힘없는 놈 먼저 먹이는 게 주인의 도리라서

그 개새끼 앞에만 밥그릇을 놓았더니

힘센 개새끼들이 으르러 으르렁거린다

못난 개새끼 배부르게 먹여놓고

잘했다고 십자가에 눈도장 찍고

부처한테 배 내밀었으나

늘 배불렀다가 하루 배고팠던 개새끼들이

내내 굶다가 하루 배불린 개새끼를 뜯어 먹었으므로

며칠 동안 개새끼들한테 사료 줄 필요 없겠네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살 뜯겨 뼈만 남은 그 개새끼 이름을 생각해 보았는데

입에서 욕만 기어 나온다

이름도 못 얻은 못난 개새끼

개새끼 같지 않던 개새끼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 같던 그 개새끼 

 

  시집 '보통 씨의 특권'(문학의 전당,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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