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에게 줄을 세우지 않았으나
이진우
개새끼들이 알아서 줄을 선다
개새끼들만 아는 개새끼들의 서열
제일 크고 우락부락한 개새끼
눈치 잘 보고 토실한 개새끼
토실한 놈 눈치 보는 개새끼
눈치 보는 개새끼를 감시하는 개새끼
그 뒤에 빌어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운 개새끼
어떤 개새끼에게 밥을 먼저 줄까
오라, 저 맨 뒤에 비루먹은 개새끼
힘없는 놈 먼저 먹이는 게 주인의 도리라서
그 개새끼 앞에만 밥그릇을 놓았더니
힘센 개새끼들이 으르러 으르렁거린다
못난 개새끼 배부르게 먹여놓고
잘했다고 십자가에 눈도장 찍고
부처한테 배 내밀었으나
늘 배불렀다가 하루 배고팠던 개새끼들이
내내 굶다가 하루 배불린 개새끼를 뜯어 먹었으므로
며칠 동안 개새끼들한테 사료 줄 필요 없겠네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살 뜯겨 뼈만 남은 그 개새끼 이름을 생각해 보았는데
입에서 욕만 기어 나온다
이름도 못 얻은 못난 개새끼
개새끼 같지 않던 개새끼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 같던 그 개새끼
시집 '보통 씨의 특권'(문학의 전당, 2015)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통 씨의 특권/이진우 (0) | 2018.08.10 |
---|---|
노자의 시창작 강의/이진우 (0) | 2018.08.09 |
매미/황동규 (0) | 2018.08.09 |
나이/김재진 (0) | 2018.08.05 |
뜨거운 밤/안도현 (0) | 2018.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