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이정록

김욱진 2018. 11. 19. 16:12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 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

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

봤습니다" "있던 자리에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

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정을 백천번 살펴서 우리 측에서

갖다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

동무께서 갖다놓을 수도 있겠디만, 고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

지 않겠습네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 쪼가리가 아니었다

면 어찌 북측 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는 가슴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불사 한 채


                  -시집 '정말'(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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