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붉은 달/안도현

김욱진 2010. 11. 8. 22:20

                           붉은 달 
                           안도현

 



그해 여름 아버지는 수박밭에다 수박을 심어놓고
첫물을 한번 따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수박밭에는 수박 대신 둥근 슬픔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수박 속에 담긴 붉은 달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저 달이라도 내다 팔아보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타이탄 트럭 하나 가득 달을 싣고
아버지의 친구 장씨(張氏) 아저씨를 따라 서울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장씨 아저씨는 여관에 들자 코를 골며 주무시고
여관방 쇠창살에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영등포 청과물 시장 새벽 경매가 끝나면
리어카에 실려 서울 시내 골목 위로 둥그렇게 떠오를
그것은 아버지가 키우다 만
붉은 달이었다

나는 그 달을 보며
너만 달이냐,
너만 달이냐,
창에 걸린 붉은 달에게
눈물을 훔치며 삿대질을 달에게 헤대었다



*시집<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2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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