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식사
정일근
밥집에 가면 국과 밥 따로 먹는 시인 알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한 그릇의 국 다 비운 뒤 비로소 밥 먹는 시인의 식사법에서, 아름답습니다! 국은 국으로 밥은 밥으로 대접 받습니다. 세상의 식사법은 국에 밥 말거나, 급하게 밥만 먹는 요란스러운 숟가락질뿐입니다. 국은 국으로 밥은 밥으로 인정하지 않고 쉽게 국밥을 만들어버리는 혼돈의 식탁은, 섞어 하나로 만드는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닌 우리라고 쉽게 익명이 되어버리는 이 시대의 밥상에서 나도 국밥이 아닌 국과 밥 먹고 싶습니다. 경건히 국 다 먹은 뒤 더욱 경건히 밥 먹고 싶습니다. 기분 좋지 않습니까? 국 다 먹을 때까지 밥 한 그릇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일이.
- 시집 <오른손잡이의 슬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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