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이 궁색할 때
김용언
잡초를 뽑고 있을 때
어린 조카가 질문을 한다
"풀을 왜 뽑고 있어요"
"응-, 잡초라서 뽑는 거란다"
"잔디는 왜 안 뽑나요"
"그거야 잔디는 기르기 때문이지"
"그러면 잡초는 왜 안 기르나요"
묻고 답하기를 되풀이해도
순수의 벽은 단단하다
답변이 궁색할 땐
물처럼 입을 다물거나
때로는 소처럼 웃는 수밖에
살다보면
내가 나도 모르는데
어찌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궁색할 때는
줄행랑이 제일이겠지
어제는
사십 대 중소기업 사장이 저승으로 줄행랑을 쳤다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나 보다
물처럼 입을 다물거나
소처럼 웃을 수 없었나 보다
-시집 <당나귀가 쓴 안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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