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농담, 허무
김승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참 골고루 썩은 세상이아, 아, 참, 어쩌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이리도 골고루 잘 썩을 수 있었을까.
불만이 있느냐구? 아니, 참, 없어.
나야 항상 평등을 부르짖어 온 사람인걸 뭐, 소망이 있다면,
아, 참, 나 같은 미물에게도 소망이 허락된다면
한시 바삐 썩고 싶다는 느낌뿐이야,
이 부패의 사회학 부패의 평등 속에 동참하기 위하여
어서 빨리 썩어야지! 하는 이 초조한 느낌)
지하철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안에 이런 의식의 흐름,
이런 내적 독백이 외설처럼 농담처럼
배설처럼 가득 차 흐르며 수송된다.
개인이란 한 사회 한 시대 안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알기 위해
항상 도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부패를 연구하며 실려가는 출근길
집의 세탁기 안에 벗어두고 온
양말처럼 텅 빈 머리통들은
서로 냄새를 풍기며 농담하며
더욱 깊어진 허무의 구덩이 안에
동아리로 칭칭 묶여
오늘 속으로 바겐 대매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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