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나희덕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병원 엘리베이터 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육중한 몸집을 들이밀며 한 아주머니가 타고 나자
엘리베이터 안은 빽빽한 모판이 되어버렸다
11층, 9층, 7층, 5층...... 문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헐거워지는 모판,
갑자기 짝수층 엘리베이터에서 울음소리 들려온다
어젯밤 중환자실 앞에서 울던 그 가족들일까,
모판 위의 삶을 실은 홀수층 엘리베이터와
칠성판 위의 죽음을 실은 짝수층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야 만난다, 울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족들과
짝수층 엘리베이터에 실린 죽음을
홀수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흰 헝겊으로 들씌워진 한 사람만이
텅빈 엘리베이터 안에 남고, 문이 닫히고,
잠시 후 B1에 불이 들어온다, 그 사이에
홀수층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시 사람들이 채워진다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아우성이 채워지고, 문이 닫히고,
빽빽해진 모판은 비워지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1층, 3층, 5층, 7층, 9층, 11층......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밥과 국을 삼키지 못할 육체를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손을 잡으려는 수많은 손들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병든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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