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서영처
울렁거리는 지층에서 태어났다
검은 줄과 흰 줄의 팽팽한 줄다리기다
터질 듯한 생기로 뛰어다니는 놈을 사로잡기만 하면 세상에 없는 희귀한 소리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엉덩이를 한 대 세게 치면 무서운 속도로 가청권 밖의 음역으로 내달릴 거다
이 지역의 등고선을 입은 얼룩말
얼룩이 상처라면
덜룩은 그만큼의 공백
얼룩이 눈물자국이라면
덜룩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늘
울타리 밖의 삶을 기웃거리지만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둔
말은 이따금 제 안의 파도를 뚫고 나온다
얼룩, 안간힘으로 울타리를 부순 흔적
산등성이 촘촘한 다랑논과 논두렁의 고단함 같은
이젠 악기도 가구도 아닌 피아노처럼
검은 말도 흰 말도 아닌 모호한 말
내가 만든 철창에 다시 갇히는 말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채가게에 갑니다 나는 / 변희수 (0) | 2019.12.24 |
---|---|
그토록 /강해림 (0) | 2019.12.24 |
엘리베이터 / 나희덕 (0) | 2019.12.10 |
흰 것에는 비명이 있다 /박미란 (0) | 2019.12.06 |
목백일홍 옛집 / 이기철 (0) | 2019.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