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야채가게에 갑니다 나는 / 변희수

김욱진 2019. 12. 24. 10:06

야채가게에 갑니다 나는

변희수


오늘은 시들시들

부활하고 싶어서 야채가게에 간다

보들보들하고 야들야들한 것은 없나요?

죽은 몸에 물을 뿌리면

살아난다고 야채가게가 웃는다

노란 파프리카가 웃는다 빨간 피망이 웃는다

아프리카의 망령들이 웃는다

조금만 더 기절해있을게

조금만 더 죽어있을게

시들시들 이파리들이 찡그린다

챙모자를 쓰고 온 한낮이

집행관처럼 푸시시 꺼져가는 살을

꼬집어본다 흔들어 본다

멱살을 잡고 고개를 들고

그러니까 보들보들 야들야들

웃어야지 웃어라

너는 도대체 왜 안 웃는 거니?

누런 떡잎 아래 벌레 먹은 표정이

땀을 흘린다 송송 구멍 난 질문을 골라서

오늘의 바구니에 담아야지

단호박은 단호하고

양배추는 힘껏 오므릴 줄 안다

감자와 양파가 환부를 숨기며

웃는다 그래 웃어야지 웃자 제발 좀!

벌레처럼 꿈틀꿈틀

다시 태어나도 다시 갈 것 같은

야채가게에 갑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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