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아무 일 없는 것처럼 / 박금선

김욱진 2020. 1. 2. 16:13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박금선


그날 돌아보니 대하들의 화형식이었다

몇 마리인지 세어보지도 못하고

저울에 올려 무게로 값을 치르고

살아서 펄펄 뛰고 있는

대하의 상품성을 확인하기 급급했다

지느러미도 삐죽삐죽 신선한 것을

벌겋게 달아오른 불길 속으로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

뚜껑을 닫은 팬 속에서 이리저리 뒤엉켜

튀어 오르는 장면도

발버둥치는 구원의 소리도 외면하고

여럿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구이가 되길 기다렸다

그것들이 지글지글 익을 때까지

분위기가 막 달아오를 때 까지

그렇게 많은 대하들의 주검을

바라보았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지옥의 문지기처럼 앉아있었다

죽어 빨갛게 꽃이 된 대하

껍질을 벗기고

악마처럼 그 뜨거운 몸을 우리는

허겁지겁 먹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날 밤 꿈속에서

대하들이 슬프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시집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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