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김명인

김욱진 2010. 11. 19. 09:08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김명인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이 겉옷을 걸어두고

물관부를 따라가 우듬지 개울에서 멱을 감는지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

물푸레나무 그늘 쪽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한낮을 내려놓고 저녁 나무가

어스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머리를 빗질하려고 문밖으로 나와 앉은

그윽한 바람의 여자와 나는 본다

밤의 거울을 꺼내들면

비취를 퍼올리는 별 몇 개의 약속,

못 지킨 세월 너무 아득했지만

내 몸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 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도 얼비치던 그 여자의 푸른 모습,

나무가 거기 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

나무를 걸어놓았던

흔적이 있던 그 자리에

나무 허공이 떠다닌다, 나는

아파트를 짓느라고 산 한 채가 온통 절개된

개활지 저 너머로 본다

유난한 거울이 거기 드리웠다

금세 흐리면서 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