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그늘 외 4편
강서완
옹이 없는 나무는 없는 겨. 천둥번개 맞으믄서 땡볕을 건넌 수백 년 아닌감? 골백번 사무친 가심에 온 삭신이 담긴 겨 썩어 문드라지고 그 속 아믈라믄 또 을마나 걸렸것남. 칼끝이 닿으면 피 보는 건 당연지산 겨. 아무리 구든 맴이라 혀도 지픈 속에 풍랑이 고인 겨. 그래도 가심 치는 그 맴이 있기에 지긋이 나이를 먹는디, 몸속에 백힌 그 그늘이 있어야 나무도 딴딴해지는 겨. 철따라 포르시름한 잎사구에 해랑 바람이랑 꽃이랑 나비랑 댕겨가면서 패인 저 옹이의 심정이 말여, 고즈넉이 만월 속에 반야심경을 서각하는 그믐달이겠구먼, 허, 워째 글짤 품은 눈이 찡긋이 웃는 것 같지 않은감? 인젠 애기 살 만지득기 애지중지 보듬어 줘야 혀. 고로케 기름 맥이고 말리고 허기를 수차례 혀야 살결에서 은근한 그늘 색이 배어나와 죽어도 산 것 맨치로 되는 겨. 근디 수십 년 칼질에 요눔들이 꺼먹눈을 뜰 때마다 내 맴에 콕 콕 찝히는 게 아무케도 야들이 내 속에 뿌리를 내리는가벼, 아녀 무성히 잎사구를 피우는가벼.
떠도는 구두
해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물의 마을엔 문패가 없다. 애꿎은 초목들만 혼쭐난다. 조석으로 핏물이 번지는 수면. 물의 마을엔 날카로운 이빨의 짐승이 살아 날마나 누군가 피를 흘리고 죽어 갔는지 모를 일이다. 물의 마을 주민 몸에 비린내가 배어 있어 햇빛이 냄새의 진원지를 캐려고 수면을 두드린다. 그때마다 물의 안쪽이 희끗희끗 천연스러워 바람이 미루나무 멱살을 잡고 흔든다. 구석구석 줄지은 오리들이 탐문수사에 나서고 낚싯줄 서넛도 물속 미루나무 뿌리에 잠복을 시작했다. 물속에 떠다니는 흰 구름 한 조각 떼어 문 백로가 하늘을 바라보며 사건의 알레고리를 추적한다. 잉어 한 마리 물속에서 튀어 올라 수면 밖 상황을 살피고 들어간 뒤 수상한 어스름이 슬슬 발을 들이민다. 물 밖 세상에서 개구리들이 요놈의 세상 도무지 '알 수 없어, 알 수 있어' 와글와글 들끓는다.
속도의 식욕
처마 끝 제비집에 침범한 구렁이는
세 마리의 새끼를 먹었고
나의 냉동고에는 쇠고기 육백 그램과
언 닭다리 봉지가 있어요
양식의 이름일 때 사체는 신성하죠
석류 한 입 물은 입처럼
뜯어먹은 입에 가뿐한 힘이 나요
진자리 모르는 꽃잎같이
라라, 즐거워요
날마다 나는 너이고,
나를 먹은 너이고
나를 뒤쫓는 너를 먹는 거룩함에
라라, 상생의 속도가 붙어요
KTX 속도로 질주하는
공포의 눈망울을
낚아챈 표범 일가의 생존 속도로
누의 내장은 몇 조각이 되었을까요?
검은 비
아기 울음이 골목을 깨운다
정적을 후비는 고양이 울음에 섞인
달그락 소리,
누군가 무엇을 훔치고 있다
집집의 창문에 들러붙은 견고한 어둠,
소리에 묻은 물기 몇 점
조용조용 팔뚝에 떨어진다
포물선을 그리는 흐느낌
가로등이 처마 낮은 집집의 근심을 비춰본다
검은 造花로 뒤덮인 弔花가 늘어선 골목
양철지붕 위를 토독토독 걷는 발걸음 소리
링거로 우유 먹던 갓난이를
해거름에 산에 묻고 온 그 집이다
처마 끝으로
검은 눈물이 녹아 흐르고 있다
사이에서 1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서비스 출동 차 배터리에 연결선을 접속해 시동을 걸고
충전이 되길 기다리는 동안
정신과 병동에 있는 그를 생각한다
영혼이 방전돼 사회 쪽으로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
그 손 꼭 부여잡고 내 영혼을 찌르르 전송시켜
십 분 만에 생각의 아우토반을
무한 속도로 내달리게 할 수 없을까?
그럼 그의 입에서
빵! 빵! 빵! 노래가 터져 나오고
옆집 아낙에게 상냥한 인사를 하고
여행도 가고, 회사에 갔다 집에도 태연하게 돌아오고
그렇게, 그의 머릿속에 빛이 들어온다면!
정신병동 창가에 우두커니 멈춰선
그대와 나 사이에서
바람이 가느다란 교신을 하고 있다
- 『애지』2010.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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