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박기영
식당 문 열고 들어가면
서툰 솜씨로 차림표 위에 써놓은 글씨가
무르팍 꼬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
아니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옻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그 아래 난닝구 차림의 주인은
연신 줄담배 피우며
억센 이북 사투리로 간나 같은
남쪽 것들 들먹였다.
“사내새끼들이 지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옻순 올라와 봄 들여다 놓는 사월
지대로 된 사내새끼 되기 위해
들기름과 된장으로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먹는다.
항문이 근지러워 온밤 뒤척일
대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먹는다.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던 노인은
어느새 영정 속에 앉아
뜨거운 옻닭 국물 훌쩍이며, 이마 땀방울 닦아내는
아들 지켜보고 웃고
칠십년대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무서운
욕을 터뜨리던 음성만
옻순비빔밥 노란 밥알에 뒤섞여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옻올랐다고 지랄하는 놈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이여.”
충남 홍성 출생.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숨은 사내』,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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