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누累 /이병률

김욱진 2010. 11. 29. 22:00

                             누

                          이병률

 

 

 

 

 

늦은 밤 쓰레기를 뒤지던 사람과 마주친 적 있다

그의 손은 비닐을 뒤적이다 멈추었지만

그의 몸 뒤편에 밝은 불빛이 비쳐들었으므로

아뿔싸 그의 허기에 들킨 건 나였다

살기가 그의 눈을 빛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환히 웃으며 들킨 건 나라고 뒷걸음쳤다

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늦은 밤 빨랫감을 털고 있는 내 방 창문을 지나

막다른 골목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숫그림자는

구두 굽에 잔뜩 실은 욕정을 들키자

번뜩이는 눈으로 달겨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럴 땐 눈이 눈에게 말을 걸면 안 되는 심사인데도

자꾸 아는 척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내 눈은 오래도록 그 눈들을 따라가고 있다

또 한 번 세상에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싶게

깊은 밤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

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친 적 있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과 수숫대-貧/장석남  (0) 2010.12.04
산정묘지1/조정권  (0) 2010.11.29
뒤편/천양희  (0) 2010.11.29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0) 2010.11.29
나를 열어주세요/나희덕  (0) 201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