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노모 일기․1

김욱진 2020. 10. 27. 13:19

노모 일기․1

 

 

청춘에 한 남자를 잃고부터

이 세상 더 이상 잃을 게 뭐 있냐며

있는 거 없는 거 다 퍼주고 살아오신 어머니

구순 고개 훌쩍 넘더니만

이승도 저승도 다 내 것으로 보이시는지

담 너머 옆집 애호박도 그저 따오고

간간이 건넛집 밭뙈기 상추며 정구지도 뜯어오고

이 골목 저 골목 떠돌아다니는 욕이라는 욕마저도

버젓이 빈 병이나 비닐봉지에다 다 주워 담아 오고

그렇게 쓸쓸히 주워 모은 하루하루를

금세 잊어버리는 낙으로 살고 계시는데

그 하루 한시가 못 잊어 전화라도 드리면

이젠 그늘도 그립다

젊은 그 영감, 정신 바짝 차리고 살라더니

밤이면 밤마다

날 붙들고 늘어지는 통에

살맛이 난다 그러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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