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국

박달나무 눈 참, 밝다

김욱진 2020. 11. 8. 21:08

박달나무 눈 참, 밝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한 그루

내 방 귀퉁이 옷걸이로 거듭났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만 듣고 살다

이젠 내 잔소리까지 듣고 산다

나무가 옷 갈아입었다

옷이 나와 옷걸이 번갈아 입었다

낮에는 나를 입고

밤에는 옷걸이를 입었다

내가 옷걸이 옷을 입고

옷걸이가 내 옷을 입어도

옷은 걸림이 없다

팔다리 잘린 옷걸이

옷 걸쳐 입을 때마다

나의 팔다리는 떨어져 나갔고

해지고 터진 바짓가랑이 사이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들렸다

나무가 옷을 입었다

옷이 나를 걸쳐 입었다

나는 옷걸이에 걸렸다

품도 소매도 없는 옷걸이에

어깨만 걸친 옷 한 벌 걸렸다

눈 밝은 *달달박박 옷 갈아입은 듯

박달이 입은 옷, 걸림이 없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경을 듣는(聞經) 새재의, 이 아침

 

*달달박박 : 통일신라시대 노힐부덕과 쌍벽을 이룬 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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